「종로상권」되 살린다|대규모 「쇼핑센터」 지을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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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근대경제사의 온갖 풍상을 간직한 채 지난 반세기동안 종로길목을 지켜온 화신빌딩이 도심지 재개발사업에 따라 올해 안으로 헐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솟아오르는 주위의 현대식 고층건물에 눌려 날로 궁색함과 왜소함을 더해가더니 끝내 도시화의 세찬 물결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철거될 운명을 맞은 것이다.
화신빌딩터를 인수한 한보그룹(회장 정태수)은 이 자리에 대규모의 현대식쇼핑센터를 지을 계획으로 있어 화신의 옛 영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신세계· 롯데· 미도파로 3분되는 도심상권의 위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화신이후」는 상당한 관심거리가 아닐수 없을것 같다.
화신백화점 건물이 세워 진 것은 1937년. 화신상회를 인수한 박흥식씨가 일본인상권에 도전할 생각으로 마음먹고 지은 지하1층· 지상6층· 연건평2천평 규모의 이 건물은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의 매머드빌딩이었다.
한때 조선 최고의 갑부로까지 명성을 떨쳤던 박씨가 70년대 들어 연거푸 사업에 실패, 계열사를 처분하고, 사재를 털어야하는 곤경에 처하면서도 끝까지 내놓지 않았던 것이 화신빌딩이다. 그만큼 박씨의 화신백화점에 대한 애착은 대단한 것이었다.
자금난을 버티다 못한 박씨가 결국 화신백화점건물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이로부터 지난10월초 한보가 인수하기까지 1년 반 동안 화신 빌딩은 주인이 3번이나 바뀌는 수난을 겪었다. 박씨로부터 화신 빌딩을 인수한 사람은 당시 신생상사 대표였던 한용운씨로 한씨는 원래 박씨 밑에서 백화점 수업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무리한 인수 때문에 인수한지 3개월만에 한씨가 부도를 내면서, 신생상사는 사채업자 조모씨 에게 넘어갔다.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지 조씨는 다시 금년3윌 주택건설업체인 염광건설 대표 곽노흥씨에게 팔았다.
곽씨는 당초 재개발사업에 관심을 갖고 신생상사를 인수했으나 여의치 않자 원매자를 물색 하던 중 한보와 선이 닿아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2백20억원에 신생상사를 넘긴 것이다.
한보는 신생상사와 함께 그 자회사인 (주)신생(봉제업체)까지 떠맡아 유통업과 섬유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한보는 이번 인수로 상당한 이득을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화신빌딩만 해도 부지가 4백60평으로, 평당 시가를 5천만원만 쳐도 2백30억원이 되는데다 (주)신생의 성남공장부지가 5천평이고 더구나 재개발사업으로 떨어지는 돈이 엄청날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한보는 신생상사를 인수하면서 유통업 진출보다는 재개발사업참여에 더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화신건물이 속해 있는 지역이 재개발지구로 고시된 것은 지난 78년으로 그동안 여러 소유주를 거치면서도 재개발사업은 꾸준히 추진되어왔다.
현재 공평 제19재개발지구로 고시된 지역은 총2천90평으로 신생상사(4백60평)를 포함, 19명의 지주가 나눠 갖고 있다.
신생을 제외한 18명의 지주 가운데 가장 큰 지주는 이미 동국제강에 넘어간 연합철강으로 지분이 3백85평.
이 땅은 원래 연철의 체육관터였으나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채 완전히 빈터로 남아있다. 나머지 지주들은 대부분 40∼50평씩 가지고 있는 군소지주들로 술집·식당·점포·사무실 등으로 임대해주고 있다.
연철을 제외한 나머지 지주들은 자기 땅을 한보에 매각하겠다는 입장이고, 연철은 재개발후 지분만큼 앞으로 짓게 될 빌딩의 일부를 분양받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는 아직 정확한 실사작업이 끝나지 않아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지주들과 어느 선에서 타결을 보느냐에 따라 재개발사업 착공시기가 결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연내로는 타협이 끝나 화신건물 철거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또 하나 문제로 걸려있는 것은 재개발사업 시공업체를 어디로 하느냐는 것. 한보로서는 당연히 한보건설이 맡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현대건설이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어 불투명한 상태. 현대건설은 신생의 전소유주인 조모씨와 이미 가계약을 체결했고, 설사 소유주가 바뀌더라도 계약은 개인끼리가 아닌 법인끼리 한 것이므로 조씨와의 계약은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한보측은 소유주가 바뀐 이상 전소유주와의 계약은 무효라는 입장이다.
한보가 신생을 인수하기 전까지 결정된 바로는 재개발사업을 통해 화신건물 일대 2천90평 대지위에 지상18층·연건평1만4천평 규모의 매머드 쇼핑센터를 짓는다는 계획이었었다.
규모상 약간의 차이야 있을지 모르지만 아뭏든 한보가 화신건물일대에 대규모 빌딩을 지어 유통업에 본격 진출하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세계· 롯데· 미도파 등 도심상권을 분할 점령하고 있는 기존 업체들은 한보의유통업 진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지리적으로 보나, 유통이론상으로 보나 도심 3사와는 도저히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것. 혹시 특정품목만을 취급하는 전문점식으로 운영하면 주로 몰리는 젊은층을 상대로 좀 장사가 될지는 모르지만 백화점식으로는 절대 승산이 없다고 주장한다.
결과야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과연 옛날의 「종로상권」이 다시 재현될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한 일이다. <배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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