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와 닛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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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70년 미국의 자동차 구매자들은 일본의 닛산(일산) 자동차 제품인 닛산 240Z에 홀리고 있었다. 그 값은 4천 달러에 불과했지만 품위 있는 모습이었다.
얼마 안가 미국인들은 닛산 510에도 마음을 뺏겼다. 여행자용 자동차의 새 시대를 연 차다. 그 차는 「스포츠 세단」이란 소리도 들었다.
일본차 선풍이 불고 있던 이 시대에 미국 포드 자동차 회사의 「헨리·포드」2세는 술에 만취한 채 모험심 없는 막료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가져온 원인』이라고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핼버스탕」이 최근 신저 『응보(The Reckoning)』에서 지적해 주목을 끌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이며 『더 베스트앤드 더 브라이티스트』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6년이 걸려 쓴 7백52 페이지 짜리 이 대작에서 미국인이 「풍요의 오만」에 빠져 스스로 나락에 빠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풍요의 오만」이란 말은 원래 아메리컨 모터즈의 전 회장 「조지·롬니」가 즐겨 썼다.
성공을 지키려고만 하는 자세는 취약하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미국 자동차 공업의 문제는 첫째로 3대 회사가 반 독점 혹은 독점 공유 형태로 있어서 기업이 자기 만족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 회사의 실권은 생산에 종사하는 창조적 인물들로부터 돈만 만지는 사람들로 옮겨간다.
그런 회사에선 기업의 목적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윤만 추구하면 된다.
일본에서 기술자·과학자가 최고 경영자 후보일 때 미국의 톱은 경제·법학과 출신이다.
포드 회사 경영진이 파벌 싸움에 휩쓸릴 때 닛산은 노조가 마치 협동조합 처럼 회사 일에 단결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핼버스탕」은 일본을 「공동체적 자본주의」로 설명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국가지도형 자본주의」다.
일본의 지도부는 거대한 관료제다. 이를테면 대장성이다.
미국은 불행하게도 그런 「기관」이 없으며, 천곡직홍(전 통산심의관)처럼 국민 전체의 일을 생각하는 「지혜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정된 부를 적절히 배분하는데 그들은 기여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밑바닥 노동자와 회사 상층부 사이의 갭이 비교적 작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적 자본주의」다. 미국에선 그 차이가 너무 크다. 거기에 미국의 최대 약점은 공립 학교 제도의 황폐이며 그것에 대해 국민이 무관심한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은 자기 만족에 빠지지 않고 한국 등 신흥 국가의 도전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대응하고 있다.
「풍요의 오만」에 빠지지 않는 일본인의 절제력이 바로 발전을 보상한다는 걸 우리도 마음에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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