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값 폭락 못 막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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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우·배추 값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값이 너무 싸니 사 먹는 사람도 안쓰러울 지경이다.
배추 10포기·무우 20개가 껌 한통 값이고 어떤 곳에선 채소밭에 아예 소를 풀어 먹인다는 얘기고 보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김장용 통배추가 아닌 김장 전에 먹는 고냉지 채소다.
사실 양으로는 김장 채소에 댈게 아닌 고랭지 채소가 올해 유난히 말썽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은 날씨 탓(?)이다. 적당한 비와 서늘한 날씨 때문에 고랭지가 아닌 평지에 심어도 쑥쑥 자라더란 얘기다. 배추의 경우 같은 면적 만큼 심어도 날씨에 따라 54%까지 수확이 왔다갔다 한다니 큰 이유가 됐을 것임은 분명하다.
또 하나 유통 예고제를 통해 올해 배추 과잉이 예상되니 작년만큼만 심자고 했는데도 농민들의 재배 면적이 적잖게(14%) 늘어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복잡해진다. 고랭지 채소란 것은 보통 9월말부터 11월초까지 나오는데 올해는 공교롭게(?) 이 기간에 아시안 게임이란 큰 행사가 있었다.
잔치 판이라면 일단 많이 먹는 것부터 생각하는 오랜 관습 때문인지 정부도 농민도 아시안게임 특수로 소비가 늘 것이란 예상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 늘기는커녕 오히려 소비가 줄어버렸다. 아시안 게임 기간 중 채소를 실어 나르는 용달차나 손수레를 도시 미관을 해치는 요인으로 지목해 시내 진입을 완전히 막아버린 것.
「견물생심」이라고 봐야 한 포기라도 더 먹을텐데 눈에 띄질 않으니 소비가 늘 턱이 없었다.
결국 보름 남짓한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밀려있던 배추·무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더우기 출하 시기를 놓친 터라 줄기에 심이 생겨 상품 가치까지 떨어지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물론 유통 예고제를 통해 정부가 파종 억제를 촉구했는데도 더 심은 농민자신도 가격폭락의 책임을 완전히 벗을 수는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하라는 것과 거꾸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농촌에 팽배해 있다는 「신뢰부재」현상이다.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농산물의 폭락과 폭등의 악순환은 농민과 정부사이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해결이 실로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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