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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재벌3세, 그들만의 특별한 진학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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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벌3세의 나아갈 길에 대한 따끔한 조언을 담은 신간 『재벌3세』(황금부엉이)가 화제다. 신문기자 출신이자 '재벌 평론가', 현 에너지경제신문 사장인 홍성추(60)씨가 쓴 책에는 그들이 받은 아주 특별한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3세는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기도 하지만 학력 포장을 위한 수상한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들만의 이너 서클을 만드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는 비밀스런 학맥 루트를 이 책과 관련 기사들을 바탕으로 들여다봤다.

‘떡잎부터 다르다’ 특정 사립초등학교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여사(가운데),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각각 경기초 16회, 21회 졸업생이다. [사진=뉴시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여사(가운데),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각각 경기초 16회, 21회 졸업생이다. [사진=뉴시스]

요즘처럼 중·고등학교가 다양화되기 전까지는 사립 초등학교가 재력가 자녀들의 특수 학맥의 원천이었다. 고액 유치원에서 출발해 유명 사립초등학교를 거쳐 해외 중·고등학교나 국내 명문대, 해외 MBA 유학을 가는 게 재벌3세들의 전형적인 교육 루트라고 포브스코리아가 분석한 바 있다. 사립 초등학교로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기초등학교(1965년 개교)가 각광을 받는다. 단지 우수한 시설이나 15명 소그룹의 학습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삼성가를 비롯해 재벌 집안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면서 자연스레 탄탄한 인맥을 구축할 수 있어서다. 16기 졸업생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20기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21기 졸업생 모임인 ‘경기회’가 유명하다. 재계에서 신일고 졸업생 모임인 ‘신수회’나 서울고·중앙고 출신의 ‘푸른회’ 등을 제치고 경기회가 주목받는 것은 초등학교 특유의 끈끈함에 있다. 서울예고와 미국 파슨스스쿨을 나온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이 21기다. 21기에는 현대가의 정유희씨도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인 정씨는 이서현 사장과 같은 반이었다. 정씨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장남 김지용씨와 결혼했는데 김씨 역시 경기초 21기다.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의 차남 박정빈, 고(故)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의 아들 신기준씨도 경기회 멤버다.

경기초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정유경(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이서현(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정유희(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손녀)
김지용(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아들)
박정빈(박성철 신원그룹 회장 아들)
신기준(고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 아들

경복초

정의선(현대자동차 부회장)
정명이(현대커머셜 고문)
조현식(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
이해욱(대림그룹 부회장)
이해창(대림코퍼레이션 부사장)
이태성(세아홀딩스 전무)

영훈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 등 재벌 4세

경기초 다음으로 서울 광진구의 경복초등학교가 ‘선택된 집단’이라고 동아일보(2011.2.16.)가 재계 3·4세 54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과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등 현대가의 사랑을 받았다.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이 정 부회장과 4학년 때 같은 반이다. 이해욱 대림그룹 부회장, 이해창 대림코퍼레이션 부사장,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도 경복초 출신이다. 이들 학교가 의전이나 경호도 잘해 선호된다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다닌 서울 강북구의 영훈초등학교도 떠오르는 명문 사립초다. 미아동 재래시장 골목에 자리해 학부모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영훈초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교육’을 실시해 체벌과 시험이 없는 학교로 유명해졌다.

“명문대 동문이란 배경이 비즈니스로 연결”

이 부회장은 청운중-경복고를 거쳐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게이오기주쿠대 석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았다. 일명 ‘이재용 코스’로 불리는 엘리트 교육 과정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지난 2014년 이 부회장과 만난 것도 하버드대 동문이란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재벌3세』의 지은이는 말한다. 만남을 주선한 한화그룹 김동관 전무도 하버드대를 나왔다. “젊은 경영자들끼리의 동질감과 신뢰감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그래픽=양리혜 기자]

[그래픽=양리혜 기자]

정의선 부회장은 구정중(현 압구정중)과 휘문고를 나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MBA 과정을 마쳤다. 창업주나 2세들이 미국, 일본 유학을 주로 갔다면 3세들은 중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SK 최태원 회장의 두 딸이 베이징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아들도 상하이의 명문 푸단대학교를 나왔다.

중·고교 시절 유학도 매우 흔하다. 미국의 명문 사립 세인트폴고등학교 등이 선망의 대상이다. 모 그룹에선 자녀를 거액의 기부금을 내세워 입학시키려다 퇴짜 맞은 일화도 있다. 이 학교는 성적이 우수해야 할 뿐 아니라 면접관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돈이 많아도 보낼 수 없는 이 학교에 3세 중에선 한화 김동관 전무, 효성그룹 조현준 사장 등 몇 명만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적인 후계 구도를 위해 학력 및 능력이 검증돼야 하지만 평범한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자식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지은이는 썼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은 영훈중에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들어갔다는 게 알려지면서 2013년 논란이 되자 자퇴한 바 있다. 한부모가정 자녀 자격에 해당했기에 적법한 입학이었다지만 재벌의 자녀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게 국민 정서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교묘한 학력 세탁 동원하기도

체육과에 응시한 한 수험생이 실기시험을 위해 달리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이 경쟁률 1:1 이하의 특기생 전형으로 입학해

체육과에 응시한 한 수험생이 실기시험을 위해 달리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이 경쟁률 1:1 이하의 특기생 전형으로 입학해 '학력 세탁'을 하는 경우도 있어 재벌가 자녀에 대한 특혜라고 지적된 바 있다. [자료사진=중앙포토]

과목별 개인 교사를 붙여 봐도 안 되면 예체능을 시켜 특기생으로 명문대에 진입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재벌3세 B는 명문 C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사람만 보면 자랑하지만 실은 일반인이 배우기 어려운 하프를 전공해 음대로 간 다음 경영학과로 갈아탄 것이다. 3세들 중에는 유독 D대 경영학과를 나왔다는 사람이 많은데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했다가 전과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들은 사격, 승마, 요트, 카누 등 고급 스포츠를 택해 입학한 뒤 미련 없이 경영학과로 전과한다. E는 D대 체육학과에 간 뒤 미국 MBA 유학을 했는데 그것만 최종학력으로 나오지 체육학과는 어디에도 없다.

체육특기자 전형은 ‘무혈입성’이 많다. 경쟁률이 1:1 이하가 67.5%로 사실상 내정된 경우들이라고 2012~14년 62개 대학의 입학 결과를 한선교(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국감에서 밝힌 적도 있다. 이들 6명 중 1명은 중도에 일반학과로 전환했다.

익명의 입시전문가는 “예체능 실기 전형은 사실상 ‘돈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다”면서 “정시에선 실기 만점이 기본이라 수능으로 갈리지만 (대부분 수능 최저가 없는) 수시는 실기, 그것도 입상 실적이 좌우한다. 입상 실적은 어떤 코치나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았는지가 중요하고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재외국민 전형이 더 쉬운 루트”라고 꼬집었다. 투자를 하면 영주권을 주는 곳도 있고 유령 회사를 차리기도 해 입학 요건을 갖추는 건 재벌에겐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 아이비리그에도 있다. 『The Price of Admission』(대니얼 골든) 내용을 소개한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예체능 특기생 입학이 특권층 자녀가 실력 없이 명문대에 입학하는 길이라고 한다. 부와 권력, 공화당과 민주당, 우파 재벌과 좌파 할리우드 배우 등 정치와 문화 전 영역을 망라한다고.

그렇다면 창업 1세대의 교육은 어땠을까. 정주영 회장은 고향인 강원도 통천(지금 북한)에서 소학교만 졸업했다. 경부 고속도로 건설 당시 “해외 유학파 등 직원을 어떻게 다루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질문에 “할아버지께 논어, 대학 등을 배웠습니다. 또 ‘신문대학’을 다닌 게 비결입니다. 아무리 유학을 다녀 온 사람도 매일매일 꾸준하게 신문을 정독하는 저를 당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홍 대표는 “학맥과 인맥에 목숨을 거는 요즘 세태에 거대한 기업을 일군 창업주가 던지는 교훈”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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