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문재인의 대통령 자질, 시험대에 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07년 11월 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측근을 통해 해명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주 출간한 회고록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 전 대표가 결의안 대응방향을 놓고 “남북 경로로 (북한의 의견을) 확인해 보자”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측근인 김경수 더민주 의원은 언론 브리핑에서 “(당시 정부가) 기권을 결정한 뒤 이를 북한에 전달한 것”이라며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할 이유도, 물어볼 필요도 없던 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회고록 그 자체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협의’설 즉답 피해 논란 증폭
본인 직접 진실 밝혀 의혹 해소하길
여당도 차분히 사실규명에 힘써야

9년 전의 결정 하나를 놓고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이 이렇게 엇갈리니 어안이 벙벙하다. 하지만 말이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대로 정부가 북한에 입장을 물어 기권 결정을 내렸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시비비를 엄정히 가려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

이번 논란은 사실관계 여부와 무관하게 문 전 대표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우선 문 전 대표는 “북한에 확인해보자”는 결론을 본인이 내렸느냐는 핵심 쟁점에 대해 가타부타 즉답을 하지 않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측근들을 통해서만 입장을 내놓고, 회의록 공개 요구엔 “그 자체가 정쟁”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북한과 관련된 논란은 가급적 피해가는 게 상책이라 여긴 듯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혹을 키울 뿐이다. 명확히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만이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측근들의 해명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논란이 불거진 직후부터 “북한에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거론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경수 의원은 “북한에 기권 결정 사실을 전달했다”고 했다. 북한과 의견을 조율한 게 아니라 결과를 통보했다는 뜻이지만 대북 접촉 가능성 자체를 부인해온 초기 대응과는 달라진 발언이다.

문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은 (결의안에 대한) 양측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다수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했다. 박근혜 정부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라의 안위를 좌우하는 대북정책은 다수결의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이 관계자들 의견을 경청한 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결단하는 고도의 통치행위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관련 부처 간에 격론이 벌어진 대북 현안에 대해 해법을 고민하기보다는 ‘다수결’이란 편법으로 매듭지으려 한 정황이 엿보인다. 군 최고 통수권자에게 요구되는 책임감과 거리가 느껴지는 처신이다.

북한이 핵무장 국가 문턱까지 올라선 상황이다. 차기 대통령의 안보관과 대북관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문 전 대표는 논란의 핵심인 ‘북한 협의설’에 대해 본인 입으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새누리당도 ‘내통’ 같은 극단적인 말로 문 전 대표를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사실관계의 객관적 규명을 통해 정치권의 대북정책 논쟁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