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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악몽 같은 며칠이었다. 복면을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장면만 해도 그런데 구호마저 가슴 철렁하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결전이라도 기다리듯이 학생들은 진을 치고, 그 주변으로는 몇겹으로 전투복 차림의 경찰들이 포진을 하고 있었다. 급기야 헬리콥터가 뜨고, 최루탄·가스탄이 터지면서 7천 수백명의 경찰이 진입, 학생들은 백기를 내걸고 줄줄이 끌려나왔다. 건국대 농성사태의 시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우리 사회가 어쩌자고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한창나이의 젊은이들이 학업은 팽개쳐 놓고 『피바다』(북한 가극) 가사나 외며 66시간의 소란을 일으키고 경찰이 이에 맞서서 전투를 방불케하는 「작전」 끝에 해산해야 했던 현실은 실로 국민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얼마나 계속되는 것인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건대 점거사건은 관용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며 단호한 의지와 행동만이 남았다는 목소리가 드세어지는 가운데 또 한편에서는 10개 대학 2천여명의 학생들이 건대 농성지지 시위를 벌였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형국이다.
오늘의 이런 위기적 사태가 무엇 때문에 야기되었고 그 원인이 치유되기는 고사하고 자꾸만 확산되고 심화되기만 하는 것 같다.
모든 결과가 그러하듯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오늘의 학생소요는 병소 발생의 근본원인을 규명하고 확산을 막는 냉엄한 현실진단이 토대가 되어 문제를 풀어가야 할텐데 그렇치 못한데서 사태는 점점 험악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학원사태에 대한 당국의 대처는 주로 치안 아니면 사법적 차원에만 의존해 온 인상이다.
그것이 어느 순간 얼마만큼의 효과는 거두었을지는 모르나 진압과 처단 기능엔 한계가 있다.
당국은 이번 입체 해산작전에서 연행한 1천2백여명과 앞서 연행했던 2백57명 등 모두 1천4백76명을 엄밀한 분류작업을 거쳐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의식 성향과 가담정도, 농성참가 경위 등을 조사해 주모자급을 밝혀 등급에 따라 선별 처리한다는 것이다.
좌경 이데올로기에 오염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송두리째 부정하며 국기를 흔드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극좌 학생은 당연히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여기엔 누구도 이의가 없다.
그러나 흑백은 구분해야 하고 친구들의 권유로 시위에 따라 나섰다가 빠져 나오지도 못하고 갇혀 버린 학생이나 좌경 구호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엄벙댄 학생은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에 단순 가담자를 과격으로 몰아 처벌하고 가두는 바람에 진짜 운동권 학생으로 돌변한 경우를 왕왕 볼 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번 분류작업도 시한에 쫓긴 나머지 조사가 소홀히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철저한 증거주의에 입각해 엄격한 기준과 범위와 한계가 그어져야하고 정상 등을 충분히 참작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진짜 좌경을 처벌할 수 있고 국민도 비로소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건대 사건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더 이상 되풀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자보와 좌경구호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자고 나면 데모에 시달리며 참고 견디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야말로 근본을 다스리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노력으로 오늘과 같은 소요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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