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비언어적 소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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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30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으로 떠들썩했었다. ‘국회의장이 사퇴하든지, (내가 죽든지) 나는 끝까지 간다’는 비장함에 긴장감이 돌았다.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한 야당 인사들의 트위터는 조롱으로 비난 받았다. 입법부 수장은 자장면 먹는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가 황급히 내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옆에서 먹방 모습을 전송하던 어느 단체의 촌극과 다를 바 없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굶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려는 이 대표의 단식은 강력한 비언어적 소통행위이다. 인간은 언어로만 소통하는 게 아니다. 비언어 수단을 이용해서도 큰 의미를 전달한다. 비언어 소통행위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동작·얼굴·몸·눈·촉각·후각·음성·거리·시간·옷·색깔·제스처·움직임·외모·장신구 등을 상징적인 도구로 사용해 소통하는 행위다. 머라비언(Mehrabian) 같은 학자는 비언어 행위가 언어 행위보다 인간의 의도 전달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북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을 위한 보비 샌즈의 단식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비언어 소통이었다. 신교를 믿는 영국에 대항하는 가톨릭 구교도 아일랜드 공화국군으로 샌즈는 14년의 선고를 받고 수감 중에 한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66일간의 단식으로 1981년 5월 5일 27세의 나이로 순교자가 됐다. 그는 특사를 보내 단식 중지를 요청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설득도 거부했다. 그를 추종하는 9명의 동료들도 46~73일간의 동조 단식으로 사망했다. 영국 대처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게릴라의 불법행위로 간주하며 방관했다. 단식이라는 비언어 소통행위가 한 사회의 이슈와 결합하여 생명의 생몰, 순교와 테러,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독립운동과 반역행위라는 이분법적 갈등을 첨예하게 대변했다. 그런 점에서 2003년 3월 천성산의 생태계 보존을 내걸고 고속철도 부설을 반대하는 100일에 걸친 지율스님의 단식도 찬반의 큰 논쟁을 야기한 경우였다.


중국 연변의 조선족 한국문학자 김학철 선생은 병마에 구속되기를 거부하고 단식으로 세상에 큰 소통을 남겼다. 21일간 곡기를 끊음으로써 2001년 9월 25일 숨진 그는 보성고를 다니다 윤봉길의사의 의거에 감동하여 독립운동의 각오를 세우고 중국으로 가서 조선의용군 분대장으로 일제와의 교전 중에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 무기수로 일본 히로시마 감옥에 수감됐으며 부상 당한 다리를 절단하는 바람에 외다리가 됐다. 광복으로 귀국했다가 1946년 입북하여 4년간 기자로 활동했으며, 김일성 우상화와 독재를 비판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우파 반혁명 현행범으로 몰려 10년간 옥살이를 했다가 1980년 무죄를 선고받았다(『우렁이 속 같은 세상』, 김학철). 유언장은 장렬했다. ‘남기는 말: 사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는 연연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간다. 병원 주사 절대 거부. 조용히 떠나게 해 달라.’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를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한겨레21, 2002, 10. 10)


비언어 행위는 언어를 통한 소통보다 더 큰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적절한 비언어 소통은 천둥 같은 소리를 낸다. 생명을 거는 소통인 단식은 누가 어떤 이유로 하든 조롱 받거나 무시 당해서는 안 된다. 무뢰한 같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가 ‘너는 해고다’라며 손가락질하는 안하무인의 비속한 비언어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비언어 소통의 의미를 경시하는 사회는 비인간적인 사회이다.


김정기


한양대?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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