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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오사노·겐지」씨|돈으로「다나카」길러 준 일본 정계의 막후 거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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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최철주 특파원】올해 우리나라 정부예산의 5배나 되는 약 60조원(10조엔)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일본 국제흥업(부동산등 다각적 투자회사)의 총수「오사노·겐지」씨가 27일 상오 69세를 일기로 파란 많은 일생을 마쳤다. 병명은 스트레스성 위궤양.
일본신문들은 그의 죽음을 가리켜『또 하나의 전후가 끝났다』『독재자 사망,「오사노」 왕국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가 오래 동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온 것은 단순히 억만장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다나카」전 수상을 길렀고「다나카」의 정치권력이「오사노」씨의 재력을 더욱 비대하게 만들 만콤 상호공생관계에 있었다.
76년 이른바 록히드 사건 때는「다나카」전 수상의 5억엔 수뢰에도 깊숙이 관여, 국회증언대에도 불려 나았으나 나중에는 위증죄로 기소돼 죽기 전까지 피고로 재판을 받아 왔다.
그를『정상』이라든가『흑막』『요괴』『괴물』『매수 왕』이라고 부른 것은 이 같은 배경 이외에 특정인사를 각료로 임명하라고 압력을 가하거나 막대한 자금을 뿌려 자민당을 지탱시켜 주었던 귀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사노」씨는 한국에도 눈을 돌러 박대통령 집권시대에 공화당정권의 거물정객과 깊은 관계를 가졌으며 현재도 대한항공 주식의 3·4%가 그의 소유로 돼 있다.
국졸의「오사노」씨는 야마나시 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빈손으로 동경에 진출, 젊었을 때부터 상 재를 타고났다는 이야기를 둘을 정도로 돈버는데는 비상했다. 전후 23세 때 통제정제 하에서도 자동차부품회사를 만들어 군부에 이를 납품, 급성장 했다.
통제된 곳에는 반드시 돈버는 구멍이 있다는 게 그의 장사논리였다. 패전 후에는 일본에 진주한 미군수송용 버스의 운영권을 손에 넣어 그의 간판기업인 오늘의 국제흥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뒤로 일본 각 온천지대의 호텔뿐만 아니라 하와이 및 미 본토의 호텔 상당수를 매수했으며 이 같은 관광사업이외에 항공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일본항공과 전 일공 등 항공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그가 현재 남긴 사업체는 국제흥업 이외에 제국호텔 등 70여 개 사에 이른다.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자녀가 없어「오사노」왕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경제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사노」씨의 동생이 후계자로서 70여 개 기업을 떠맡을 것으로 보이나 그의 경영수완은 아직 미지수여서「오사노」씨의 사망은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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