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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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는 30년 전의 서울 풍경을 묘사하는 영화나 TV드라마 단골 촬영장소였다. 50대 이상 노년층이 대부분 모여 살던 우중충한 이 아파트단지에 지난 주부터 전셋집을 알아보는 신혼부부들이 몰려들고 있다.

국내 최초로 공동주택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도심에서 가깝고 초고속 통신망까지 깔린 아파트로 입소문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가구마다 앞뒤로 발코니가 새로 생기는 등 4.53평의 서비스면적이 늘어났고 화장실.주방 등 내부 구조도 새 아파트 못지않게 바뀌었다.

◆리모델링 과정=1971년 세워진 이 아파트는 외벽에 금이 가고 꼭대기 층은 비가 오면 물이 샜다. 건설 당시 단열재 시공도 하지 않아 냉.난방 비용도 많이 들었다.

2000년 12월 안전진단 결과 D급(사용제한 여부 판단과 정밀안전진단 필요)판정이 나오자 18평형 2개동 60가구 주민들이 리모델링에 동의했다. 당초 재건축을 추진해오다 현재 용적률 일대일로 재건축하는 경우 수익성이 전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 4월 리모델링 허가를 받은 뒤 13개월의 공사 끝에 28일 준공검사를 받아 다음달 8일 입주를 시작한다.

◆공사방법=소형 포클레인이 계단을 타고 각 층에 올라가 기둥.보.바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철거했다. 지난 30년 동안 연탄.온수.가스 난방을 덧입혀 30㎝나 높아진 바닥도 원래 두께인 12㎝만 남기고 모두 거둬냈다. 바닥에는 가스보일러 배관을 설치하고 가벼운 소재로 마감했다.

노후 설비와 배관은 교체하고 침실.주방.화장실 배치도 최신 구조로 확 바꿨다. 특히 아파트 앞뒤에 지하 33m까지 철골조를 박은 뒤 철근 콘크리트로 바닥을 메워 발코니를 새로 만들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아파트에 철골조가 보강돼 오히려 안전도가 높아졌다.

◆경제적 효과=공사에 소요된 비용은 가구당 5천여만원. 당초 4천6백80만원에 계약했으나 공사과정에서 주민들이 좀 더 비싼 고급자재를 원하면서 3백여만원이 추가됐다. 그러나 은행이 '리모델링 후 자산 평가' 방식으로 이주비 5천만원, 공사비 2천만원 등 7천만원을 낮은 금리로 대출해 줬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2001년 8월 7천만원이던 아파트 매매가격은 리모델링에 들어간 지난해 8월에는 1억2천만원으로 올랐고, 재입주를 앞둔 현재 최고 2억원을 호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망=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서울 시내 아파트 10개 지역에서 1천여가구가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압구정 아크로빌과 한남동 힐탑아파트는 리모델링공사가 진행 중이며 ▶방배동 삼호아파트 14동▶압구정동 현대아파트 31.71.72동▶신사동 삼지아파트▶동부이촌동의 리버뷰 맨션과 로얄맨션▶방배동 궁전아파트 등은 사업을 추진 중이다.

재건축은 요건이 까다롭고 공사비와 시간이 많이 드는 반면 리모델링은 짧은 기간 내 기존의 주거환경을 최대한 살리면서 재건축 비용의 75~80%만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선임 연구위원은 "기존 용적률 1백50% 이상의 중.고층아파트는 재건축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며 "노후 아파트의 주차장.엘리베이터.낡은 배관에 불만이 많은 만큼 2005년부터 아파트 리모델링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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