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7년 체제의 수명이 다했다”고 하면서 촉발한 여권발 개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가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단속하고 나섰지만 개헌론에 가세하는 의원은 점점 늘고 있다.
김무성·김종인·원혜영·정진석 등
친박·친문 빼고 여야 연대 구상
일부 친박 ‘반기문 대통령 - 친박 총리’
외치·내치 권력 분점 시나리오도
분권형 지지 62명, 세력화까지 먼길
주목할 대목은 ‘분권형 개헌론’이 여야 모두에게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권형 개헌은 대통령이 외교·통일·국방 등 외치(外治)를,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와 여야 정당이 의석수대로 총리와 각 부처 장관을 나눠 맡는 독일식 내각제 2개 모델이 있다.
정 원내대표가 꺼낸 개헌 모델도 분권형이다. 그는 13일 통화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극복과 권력 분립을 위해 독일식 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무성 전 대표도 “개헌으로 권력을 나눠 연정(聯政)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가세했다. 야권에선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원혜영 의원, 정세균 국회의장 등이 분권형 개헌론자다.
범친노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원혜영 의원은 “권력이 한 명에게 집중되는 대통령제로는 책임정치가 불가능하다”며 “정치세력과 집단이 책임정치를 하는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와 출신 정파가 다양한 의원들이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바람에 ‘정계개편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미 김종인 전 대표는 “여야를 떠나 분권형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겠다는 후보들이 모이자”며 ‘비(非)패권지대 개헌연대’ 카드를 던진 상태다. 여야의 주류 세력인 친박·친문 진영을 제외하고 김무성·남경필, 박원순·안희정·김부겸 등 비박·비문 주자들이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묶어 제3지대에서 결집하자는 구상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대표와 생각이 같다. 분권형 개헌에 동의하는 주자들에게 연대를 제안한다”고 화답했다.
여권 주류인 친박계 일부에서도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가 권력을 분점한다는 시나리오에서 분권형 개헌 지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반 총장에게 우호적인 김태흠 의원은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순수 내각제로 한 번에 가는 것은 국민이 부담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총리가 외치와 내치를 나누는 이원집정부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권형 개헌론자들이 20대 국회에서 다수를 점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헌을 주도할 만큼 힘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앙일보·한국정치학회가 지난 6월 실시한 의원 이념·정책성향 조사 결과 이원집정부제(36명)와 내각제(26명) 등 분권형 개헌을 바라는 의원(62명)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파(134명)의 절반 정도였다.
분권형 개헌론이 서로 다른 속내의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출발하다 보니 하나의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작다는 주장도 강하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분권형 개헌론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를 견제하려는 의도”라며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여권발 개헌론은 친박 단독 집권이 어려워지니까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를 노린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며 “개헌은 박근혜 대통령이 반대하고 있기에 실기했다”고 주장했다. 친박 주류인 최경환 의원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개헌이 되면 좋겠지만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임기를 줄이는 데 동의하겠느냐”며 “대선후보들이 공약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식·이충형 기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