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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녀 미인 대회’ 30년 장수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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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전북 임실에는 30년 동안 한국적인 전통 미인을 뽑는 이벤트가 있다. 매년 9, 10월 열리는 ‘소충·사선문화제’의 백미인 ‘사선녀(四仙女) 선발 전국 대회’다. 1987년 시작된 이 대회는 총 250여 명의 미인이 선발돼 예향(藝鄕) 남도의 미를 전국에 알렸다. 2000여년 전 임실군 관촌면에서 신선 4명과 선녀 4명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놀았다는 전설에 바탕을 둔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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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사선녀 선발 전국 대회’ 입상자들. 왼쪽부터 유혜리(진), 정무린(선), 이유나(미), 조정연(정), 조다선명(포토제닉), 구가은(인기상), 김지수·김현진(향토미인). [사진 김성룡 기자]

이 대회는 단명(斷命)하는 사례가 많은 여느 미인대회들과 달리 30년간 꾸준히 열렸다. 첫해부터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사스·메르스·태풍 등 온갖 악재에도 대회를 거른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 대회의 장수 비결로 참가자들의 진입 장벽이나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다는 점을 꼽는다. 이 대회는 대개 주거지나 지역 출신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향토미인대회나 특산물아가씨 대회와는 달리 전국에서 후보를 모집한다. 참가비도 무료인 데다 2박3일 동안의 합숙 훈련비를 모두 주최 측이 부담한다. 미용과 메이크업, 각종 옷을 준비하는 데만 수백만원이 드는 일반 미인대회보다 경제적 부담이 훨씬 적다. 행사비용은 임실군·지역기업의 지원 등으로 마련한다.

250명 배출…‘남도의 미’ 알리미로
올해는 유혜리 양 등 8명 뽑혀
참가자 신체 조건보다 품성 우선
대회 공식복장은 ‘전통 한복’

몸매나 키 같은 신체 조건보다 품성에 무게를 두는 심사 기준도 장수 비결로 꼽힌다. ‘한국적인 여인상을 계승·보존한다’는 대회 목적에 따라 시작부터 끝까지 한복만 입고 대회를 치른다. 수영복과 비키니 심사까지 하는 다른 대회들과는 추구하는 미(美)의 기준부터가 다르다.

통상 미인대회 참가자들은 연예인 지망생이나 승무원 준비생들이 많다. 미인대회 출신 스타가 많고 항공사 등에 지원할 때 유·무형의 가산점을 받아서다. 보통 미인대회에 키 170㎝ 이상에 볼륨 있는 팔등신 몸매를 가진 서구형 미인이 대거 참가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대회는 자기소개서에 키와 몸무게를 적는 난조차 없다. 2014년에 참가한 유은정(23·국악인)씨가 162㎝의 키에도 인기상을 받은 배경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을 ‘땅꼬마’라 부르는 유씨는 “예선부터 벽에 키 재는 줄을 그어 놓는 미인대회가 많다”며 “165㎝ 밑이어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가 키 작은 참가자들에겐 핸디캡”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또 “대회 내내 한복을 입기 때문에 이미지가 단아하고 품성이 좋은 참가자가 뽑힌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직업군과 장래희망이 다양한 것도 특징이다. 올해 선(善)에 뽑힌 정무린(23·쇼호스트 강사)씨는 “장래희망이 법조인·공무원·무용가 등 다양한 꿈을 가진 참가자들이 입상하는 것을 보고 다른 대회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올해 30회 대회에선 유혜리(17·한림연예예술고 2학년)양이 진(眞)으로 뽑히는 등 8명이 입상했다.

30년간 대회를 이끌어온 양영두(66)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장은 ‘자주성’을 오랜 흥행의 비결로 꼽았다. 그는 “지역의 명승고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주민들이 만든 축제가 30년간 명맥을 이어온 사례는 전국적으로 드물다”며 “임실군이 일부 보조금을 지원하지만 민간이 주도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원도연 원광대(문화콘텐츠) 교수는 “많은 미인대회가 ‘성(性)을 상품화한다’는 논란 속에서 사라져가는데 사선녀 대회는 한국적인 미인상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대중들에게 꾸준히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실=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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