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정치바람 타선 안되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모든게 제가 부덕했던 탓입니다. 그러나 기업이 정치바람을 타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기업이 특정개인의 것이던 시대는 지나지않았습니까.』
24일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고려원양 대표 이학수씨(67)는 10년전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 눈을 감은채 한동안 말을잇지 못했다.
서울견지동 허름한 가건물 2층의 5평 남짓한 구석방이 고려원양 사장실.
한때 국내최대의 원양어업회사로 1백55척의 원양어선을 거느렸던 화려한 시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규모.
이씨는 인쇄소를 경영하면서 5·16에 적극 가담했던 「혁명주체」의 민간인핵심멤버.
5·l6혁명공약의 인쇄를 맡았던 이씨는 혁명정권이 들어서자 광명인쇄소·고려원양등 사업체가 크게 번창해 한때 6천명 종업원을 거느리고 원양·인쇄업계에 군림했던 재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이씨는5·16후 자신이 권력의 비호를 받아 재력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사뭇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5·16때 거사를 도운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혁명주체들에 의해 구속까지 됐으니 소문처럼 덕본것도 없었던것 아닙니까. 제가 구속된 것도 당시 정권의 실력자였던 고향선배 J씨등에게 정치자금을 대주었다는등 정치적인 이유로 알고 있읍니다.』
이씨는 구속직후 수사기관에서 조사하면서 보고서를 8군데에나 만들어 보내더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또 서울구치소에 수감된후 강제로 정부당국이 고려원양에대한 매매계약서까지 작성했으나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제동을 걸어 계약이 무효화한 적도 있었다고 비화를 덜어놨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자신이 구속된 자세한 배경이야기에 대해서는 좀더 세월이 흐른뒤 이야기하자며 입을 다물었다.(구속당시 이씨의 혐의내용은 8억여원의 각종 세금포탈과 60억원 상당의 외화를 뻬돌렸다는 것으로 검찰에서 징역 10년에 벌금25억원, 추징금 60억원을 구형했었다.) 『9개월만에 보석으로 풀려나보니 무엇보다 광명인쇄소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었어요. 정부기관을 비롯한 평소 거래선이 모조리 끊겨버렸으니까요. 더구나 가깝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데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읍니다. 그런점에서 수감중 건강관리에 관한 서적을 넣어주신 고 홍진기 중앙일보회장님의 따스한 정은 정말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이씨는 석방된후 묵은 신문을 보고 세상의 온갖 비난이 자신에게 쏠렸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한남동에는 에스컬레이터를 갖춘 초호화판 자택이 있으며 방문의 손잡이가 순금이라느니, 건축자재가 모두 밀수품이라느니하고 과장보도됐더라는 것.『원양어업 외국 바이어들을 접대하기 위해 제가 지은 집이지요. 1천2백평 대지에 건평 3백평으로 출감후 회사 재건을 위해 처분했읍니다.』(이씨는 그후 이집을 통일교 문선명교주에게 1억5천만원을 받고 팔았다.
출감후 8백억원의 빚을 갚고 현재산은모두 6백억원쯤 되지만 그중 4백억원은 빚이라고 했다.)
이씨는 그동안 사업상 1년에 3∼4차례 해외나들이를 할때마다 법무부허가를 받느라 번거로왔다며 이제는 무죄판결로 홀가분해겼다고 했다. 『늦게나마 명예가 회복돼 다행입니다. 지금와서 누구를 원망하겠읍니까. 앞으로 좋은 회사를 만들어 사회에 남겨놓고 가고싶은 생각뿐입니다.』
이씨는 현재 광명인쇄소·고려원양 (40척)·고려식품등 3개회사에 2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외아들 근우씨 (31) 가 회사감사로 근무중이다.<신성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