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과거에 갇힌 한국, 새 정책목표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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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경제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위기 직후 경제학계는 위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하며 당혹감을 느꼈고 곧 위기의 발발 이유를 규명하고 향후 또 다른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서둘렀다.

성장만 추구하면 미래 위태로워
환경 보존과 복지향상 해결 할
조화로운 성장 방안 모색해야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경제학계는 보다 냉정함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지금은 위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부각된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바뀐 환경 하에서 올바른 정책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경제현상들이 사실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명확해짐에 따라 이를 감안하여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이러한 움직임을 “경제적 도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New Approaches to Economic Challenges, NAEC)”이라고 명명하였다.

새롭게 부각된 현상들은 무엇인가?

첫째, 세계화가 초래하는 부정적인 효과다. 과거에는 국가간 재화 및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경제 효율성을 높인다고 믿었고, 선진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를 통해 후진국들도 세계화에 동참할 것을 강요해 왔다. 하지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초래하는 위험이 얼마나 큰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확실해졌다. 특히 자본의 급격한 이동이 선진국들에도 위기를 초래함에 따라 IMF조차 국가간 자본이동에 제한을 가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 확대된 소득 불평등 문제를 더 이상 덮어 둘 수 없게 됐다. 소득 불평등은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이래 줄곧 나빠졌다. 사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득 불평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불평등이 존재해야 노력을 할 유인이 생기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의 확대는 오히려 효율성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제 소득 불평등은 성장을 저해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중산층의 소멸로 이어지고 소비 의 감소를 초래해 경제회복을 어렵게 한다. 또한 소득 불평등은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며 심한 경우 위기 상황을 초래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셋째,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제체제의 중요성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당수의 선진국은 아직도 위기 이전 수준까지도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이는 일단 위기를 겪으면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위기를 겪지 않도록 사전적으로 견실한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한국도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외국자금에 과도하게 의지함에 따라 위기에 허약한 체질이 있었다. 최근 중국도 위기에 취약한 형태로 성장만을 추구하고 있어 위태로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환경의 중요성이다. 전 세계적인 온난화와 중국 및 신흥국들의 급속한 성장이 초래한 환경파괴는 물질적 성장 외에도 좋은 환경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한국의 경우도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악화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부각됨에 따라 성장만을 단일의 정책목표로 삼는 것이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오히려 성장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함께 해결할 수 있는가가 더욱 적합한 문제 의식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새로운 정책목표를 수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도 과거의 사고방식에 갇혀 성장일변도의 정책만을 고집하고 있어 걱정이다.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전기료 체계, 환경문제를 도외시한 석탄 화력 발전소, 창업과 균등한 기회를 막는 재벌위주의 경제발전 전략, 내수경기 확대를 막는 수출위주의 성장전략, 가계부채 급등을 도외시한 부동산경기 부양 정책 등 성장위주의 정책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제 정부는 이러한 현 정책들이 소득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경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부작용이 없는지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새롭게 대두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절실하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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