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리예술 100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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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산을 들고 나갈 것인지, 그냥 나갈 것인지 망설인 끝에 두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코스모스가 피었는데도 하루거리로 하늘을 덮은 먹구름은 장마의 연장인지 가을비인지조차 가릴 수가 없다.
이상기후 탓으로 계절감각을 마비시켜준 작 김의 일기는 그 옛날 3일이 추우면 4일은 따뜻하리라는 겨울향수를 그립게 한다.
프랑스 유리예술 작품들이 진열된 예술의 전당 호암 갤러리의 아침 분위기는 그지없이 상쾌하고 신선한 영기가 내린 듯 했다. 주옥같은 작품을 한점 두점… 감상하는 동안 나는 점점 신비로운 정령계로 끌려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예 예술이지만 어떤 작품은 정교하게 쪼아 빚어진 근대조각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과거에서 미래로 시한을 초월한 창작 정신과 혼신을 불사른 장인 정신으로 이뤄진 작품엔 미와 철학이 공존하고 있기에 지구촌의 인류, 누구에게라도 공감을 주니 현세 후세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작품은 위대한 인간 승리를 상징하듯 느껴지지만 그 바닥엔 작가 인생의 고뇌와 비애가 깔려있다. 흡사 떨어져 쌓인 낙엽이 흑갈색이 되도록 썩고 썩어, 묘한 약과 같은 내음을 풍긴 양 승화된 고독의 산물인 것이다. 색광이 희한한 주빛 『마스크 헤라』는 가장 눈길을 끌어당겼다.
그게 감동인지도 모른다 메마름에 시달린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셔 주었고 누적된 짜증과 나름대로의 비애를 달래주는 작품이었다.
프랑스 인이 프랑스 여인을 모델로 제작한 작품이지만 내 눈엔 흘러간 먼옛날, 보았던 화장기 없는 한국의 어머니 상이 떠올랐다. 삼베 적삼 섶을 걷어올려 깨끗한 샘물에 씻은 젖가슴을 두들기며 보채는 아이를 오라고 손짓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었다. 퍽이나 동양적이고 때로는 인자하신 보살님처럼 보이기도 해 나도 모르게 합장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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