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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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향후의 정국은 어디로 가는가. 여당은 유성환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요청 안을 전격 통과시키고 야당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농성하는 오늘의 정치풍경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경은 실로 암울하기만 하다.
집권당 측이 야 측 타협요청에 대해『정치적 타협의 여지는 없다』고 일축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예상은 어떻든 적중되었다. 일부에서는 단 하루쯤이라도 지나 통과시키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있었지만 여당 측은 16일 강행 돌파방침을 어김없이 실천하고 말았다.
지금 이 단계에서 처리과정에 법적 하자가 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설혹 하자가 있다 해도 그 때문에 한번 처리된 안건이 무효가 되거나 뒤집힌 일은 의정사상 한번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적어도 당분간 강경 대 강 경이 맞 부닥치는 소리가 요란하리라는 점이다. 그나마 헌특 조차 사실상 기능이 정지될 마당이니 대화를 나눌 장소조차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찬바람만 부는 정가의 모습에 국민들은 그저 답답하고 불안할 뿐이다.
집권당의 단호한 조치는 유 의원의 발언이 국기를 뒤흔드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야당에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반공보다 통일이 국시여야 한다』고 한 유 의원의 발언은 전후맥락을 따져 보면 본 뜻은 아니라는 주장도 한다.
아무튼 야당 쪽이나 당사자의 해명을 한번 들어볼 겨를도 없이 돌파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간, 쉴 틈 없이 각박한 정국 운영방식은 생각해 볼일이다.
물론 여기엔 양쪽 모두 정치적 계산이 없지 않겠지만 국민들이 그것까지 해량하기엔 오늘의 시국이 너무 스산하고 안스럽다.
이제 개헌이란 막중한 국가대사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가나 국회가 제 백사하고 한 의원의 발언문제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그 발언이 몰고 온 파장의 의미가 심각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부터 풀어 가야 할 중대사가 너무 많고, 넘어야 할 고비도 너무 험난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이번 국회는 합의개헌을 이룩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여야간의 합의가 아니고 야합이 된다든지 신민당을 제의한 정당끼리의 합의로만 처리된다든지 하면 참다운 정치안정으로 이어질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는 국민적 통합이다. 오늘처럼 우리 국민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면 어떻게「선진화」를 이룩하고 외세에 대항해서 국력을 증진, 신장시켜 나갈 수 있겠는가.
아시안게임을 통해 우리는 국민의 활력과 의식수준이 높아진데 대해 스스로 놀란바 있다. 그런데도 유독 정치권만이 몇10년 전에나 있었던 정치 행 태를 되풀이하고 있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시비곡직을 떠나 보면 태풍은 지나갔다. 언제까지고 소란한 상황에 매달릴 수 없는 일이다. 여야정치인 모두가 오늘의 사태를 몰고 온 과정에 대한 냉철한 자기 반생을 하면서 감정 아닌 이성으로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할 때다. 차원 높은 정치력만이 우리가 처한 난국을 풀고 국민들이 갖고 있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포기는 곧바로 파국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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