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조업' 中선원들은 '먹고 자고' 해경은 '뒷바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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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2시쯤 전남 목포시 산정동 해경 전용부두. 조타실을 중심으로 선체가 전체적으로 검게 탄 상태로 정박된 102t급 중국어선 S호에 중국인 선장 A씨(41)와 선원 13명이 해경의 지시에 따라 차례로 탑승했다. 가슴과 등쪽에 '해양경찰'이라고 적힌 노란색 조끼를 맞춰 입은 선원들은 지난달 29일 전남 신안군 홍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의 검문검색에 불응하고 도주하게 된 상황, 해경이 어선에 올라타는 것을 방해하려고 조타실 문을 걸어잠그고 배에 대나무를 설치한 상황, 해경이 섬광폭음탄 3발을 던진 후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재연했다. 해경이 이들의 진술과 실제 상황을 비교하며 혐의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준비한 자리다..

S호의 선장 A씨는 다른 배의 어업허가증을 소지한 상태로 한국 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한 혐의(EEZ어업법 위반)로 구속돼 유치장에 입감됐다. 선장과 달리 선원 13명은 아직 참고인 신분이어서 목포해양경비안전서 3009함에서 머무르고 있다. 목포해경이 불이 난 S호를 전용부두로 예인해 온 지난달 30일부터 12일째다.

해경에 따르면 중국인 선원들은 3009함 1층 직원용 체육실에서 생활한다. 약 66㎡ 내외의 공간으로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기구와 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선원들은 이곳 바닥에서 모포나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잔다. 한눈에 봐도 위생 상태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S호보다 훨씬 쾌적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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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은 삼시 세끼 거르지 않고 식사를 제공받고 있다. 3009함 승조원들이 먹는 음식과 똑같이 밥과 국에 서너 가지 반찬이 나온다. 매 끼니마다 조리사나 3009함 내 의경, 직원 등이 음식이 담긴 통을 체육실로 가져가 식판에 배식해준다. 끼니당 4000원 안팎의 식사다.

불법조업에 가담하고도 선장이 아닌 선원들이라는 이유 등으로 혐의가 적용되지 않아 시간도 자유롭게 보내고 있다. 체육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 방송을 보거나 낮에는 잠을 잘 수 있다. 사고 초기에만 집중적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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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선원들이 머무르는 탓에 목포해경의 대표적 경비함인 3009함은 중국어선 단속 업무 등을 위해 현장에 나가지 못한 채 정박돼 있다. 불에 탄 S호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가 나오는 이달 중순까지 이런 상황은 계속된다. 현장 업무는 다른 경비함정들이 대신 맡고 있다.

불법을 저지른 중국인 선원들은 한가롭게 자유를 누리고 해경은 단속에도 투입되지 못한 채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상황은 S호가 불에 탄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됐다. 통상 해경에 나포된 중국인 선원들은 함께 예인돼 온 자신들의 어선에서 생활한다. 끼니부터 숙박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S호의 경우 화재로 인해 선원들이 오갈 곳이 없어졌다. 해경 관계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3009함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며 "모든 비용은 해경 예산으로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사진 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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