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흑자 시대의 흑자 정신|김중웅<KDI선임연구위원·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3월 이후 계속되는 흑자가 이대로 간다면 올해 경상수지는 25억 달러를 넘는 혹자를 실현할 전망이다. 무역수지 흑자는 그야말로 단군이래 처음 겪는 일이다. 잘 만하면 우리나라도 올해를 전환점으로 하여 흑자시대에 접어들 것 같다.
금년의 국제 수지 흑자에 대해서는 소위 3저 호기의 경제 여건 변화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입장과 그 동안 정부가 꾸준히 추진한 안정화 정책과 산업체질 개선의 결과로 나타난 흑자전환이라고 보는 견해로 갈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흑자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따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처럼의 흑자전환을 기조적으로 정착시키고 흑자경제의 새로운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의 하나가 과다한 부채경제라고 할 수 있다. 지난날 경제개발을 위한 투자재원을 대부분 해외저축에 의존한 것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국가의 외채도, 개별기업의 부채도 지나치게 과다하게 되어 국민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수익률이 저하되고 이제는 부채경제가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된다는 것은 성장을 위해 필요한 투자 재원 조달을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국제수지 흑자 전환이 기조적으로 정착된다는 것은 한나라의 경제발전단계에서 볼 때 경제정책 운용기조가 전환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것은 투자재원의 자력조달(국제수지혹자)에 의하여 고투자와 고성장이 가능해지고 이로 인한 소득향상을 통해 저축이 증대되면 흑자확대와 외채감소를 달성할 수 있는 경제의 호 순환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자 실현이 언제나 국민경제에 좋은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수지가 흑자로 됨에 따라 우리경제가 당장 부딪치는 두 가지 큰 문제는 더욱 격화될 것이 예상되는 시장개방 및 원화 절상 압력과 해외부문으로부터의 유동성 증대로 인한 물가상승 염려다. 지금까지 경상수지 적자와 외채누증을 이유로 버티어 온 시장 보호의 필요성과 설득력이 약화되었으므로 앞으로는 원화 절상과 시장 개방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생각된다.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면 통화를 환수해 오던 해외부문이 통화 증발 부문으로 반전됨으로써 흑자시대에는 통화공급 수준의 안정적 관리를 위하여 국내신용등급의 상당한 위축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정책대응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해외부문의 통화증발을 해소하는 대책으로는 외채를 상환하거나 해외투자를 확대하여 늘어난 유동성을 해외부문자체에서 흡수한다거나 또는 금융재정정책에 의하여 국내부문에서 조절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거액의 대외채무를 부담하고 있어 이를 상환하기 위 하여는 상당기간 경상수지 흑자의 확대를 억제하는 대책이 대외 경상거래 분야에서는 찾기가 어렵고 주로 국내부문의 중화 적 대응과 대외 자본 거래 부문을 통해 흡수할 수밖에 없다는데 정책선택의 제약성이 존재한다. 더구나 금융재정정책에 의하여 통화를 환수하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금융재정을 통하여 유동성을 흡수하는데는 그 규모에 있어서 한계가 있고 또 외환평형기금 등에 의하여 유동성을 환수하더라도 국제수지 흑자 분을 외화자산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한 원화 절상의 압력을 받게 되며 통화를 환수하는 긴축 정책을 실시하는 경우에도 금융 긴축의 효과 파급에 있어서 부문간의 불균형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부문으로부터의 통학증발을 해소하려면 위의 여러 정책 대안 중 어느 하나에만 치중할 수 없고 조화 있는 정책조합이 요청된다. 여하간 엄청나게 늘어난 경상수지 흑자 때문에 앞으로 민간부문의 긴축이 강화되고 기업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재정의 통화흡수기능에 한계가 있더라도 재정부문의 팽창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 물가안정 속에 지속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적자 경제시대이건 흑자 경제시대이건 금융저축의 증대가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혹자시대를 맞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과거와는 다른 정책운용과 함께 국민의 흑자정신의 확립이 필요하다. 나는 여기서 여유 있는 마음자세와 긍정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합리적인 행동의식의 세 가지 정신 자세를 흑자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국민은 몹시 급하고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앞으로는 여유 있는 자세로 조급성을 극복할 때 선진경제의 기반을 굳힐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흑자시대에는 소득이 늘어남에 따른 소득분배의 격차 때문에 사회계층간의 마찰과 불화가 발생하기 쉽다. 국민의 새로운 복지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적 갈등과 마찰을 해소하기 위 하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협력하는 긍정적 사고와 화합이 요청된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국제사회에서는 타국의 희생을 통한 우리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식의 일방 통행 적 교역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경제관이나 행동도 보다 합리적이고 의연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실속 없이 크게 떠드는 양담배 금연운동과 같은 단체 행동은 우리의 대외통상 입장만을 어렵게 할 뿐이다. 통상교섭이나 경제외교는 원래 소리 없이 내실 있게 추진하는 법이다.
이제야 말로 우리국민은 흑자정신을 함양해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