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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휴직 중 로스쿨 행 경찰 징계는 정당"…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판사된 경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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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출신 경찰 간부들이 편법 휴직을 통해 변호사자격을 취득해 온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서울경찰청에 근무하던 이모 경정은 2014년 3월부터 연수휴직을 받아 서울에 있는 유명 사립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강원도에 있는 A대학원 박사과정에 동시에 입학했다. 그러나 휴직 기간 중 복무상황 보고서에는 A대학원의 교육과정만 적었다. 3년제인 로스쿨 진학은 2년 한도인 연수휴직의 목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3월 편법적으로 로스쿨에 진학한 경찰대 출신 경찰 간부 32명을 적발했고 이씨는 그 중 하나였다. 서울경찰청은 자체 조사를 거쳐 지난해 5월 이씨의 휴직을 취소하고 복직을 명한 뒤 7월 견책 징계를 했다. 견책처분에 불복한 이씨는 소청심사위에 심사를 청구해 지난해 11월 징계를 ‘불문경고’로 감경받았지만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에 불문경고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씨는 “로스쿨에 다니기 위해 형식적으로 연수휴직을 신청한 게 아니고 A대학원 박사과정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공무원의 로스쿨 진학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는데 두 대학원을 병행했다고 ‘휴직의 목적 외 행위’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 14부(부장 홍진호)는 “박사과정 연수를 충실히 수행했더라도 로스쿨 다닌행위는 ‘휴직의 목적 외 사용’에 해당해 국가공무원법이 정한 복종의무ㆍ품위유지의무ㆍ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국가공무법 등 관계법령에 따르면 연수휴직 대상 교육기관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설치된 대학원이고 휴직 기간도 2년으로 제한된다. 재판부는 “로스쿨 설치 근거법령은 법학전문대학원법이고 기간도 3년”이라며 “법령상 제한과 이를 허용하면 공무원의 직무 기강을 저해하거나 공무의 본질을 해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 등에 비추어 연수휴직 기간에 로스쿨에 다닌 것 자체가 연수목적 외 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3년 동안 할당되는 수업이나 학습량이 상당한 로스쿨 과정을 공무원이 정상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면서 소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휴직제도의 특혜적 성격 등에 비추어 이러한 편법적 휴직 사용을 근절할 필요성이 크다”고 제시했다.

경찰대 출신 경찰간부들이 연수휴직을 통해 경찰을 이탈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연수휴직으로 2년제 일반대학원에 적을 걸어둔 채 사법시험에 매진하는 것을 눈감아 왔던 관행의 문제점이 법조인 양성체계가 3년제 로스쿨 체제로 전환되면서 불거진 것이다. 한 경찰대 출신 경찰 간부는 “로스쿨 도입 이전에도 초임인 기동대 근무가 끝나면 한직 발령을 청해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공부 막바지에 2년 휴직을 받아 합격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많았다”며 “불편했지만 혹시 경찰로 돌아오면 조직에 도움이 될까 싶어 만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1981년 경찰대 개교 이래 137명이 사법시험에 붙었지만 이 중 경찰에 남아 있는 사람은 20명에 불과하다.

편법 휴직을 통한 변호사 자격 취득 문제는 로스쿨 도입 이후 심각해졌다. 2009년 로스쿨 도입이후 올해까지 로스쿨 입학자 중 경찰대 출신은 148명. 퇴직 후 입학자도 있지만 상당수는 휴직 중 로스쿨을 다닌 경우로 파악된다. 한 서울 소재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현직 경찰들은 대개 2학년 때까지 수업을 당겨 듣고, 3학년때는 최소 과목만 신청해 근무와 병행한다"며 “비법대생들에겐 힘든 일이지만 경찰대 출신들은 이미 헌법ㆍ행정법ㆍ형법ㆍ형사소송법 등을 학부 과정에서 이수한데다 사시 유경험자들이 많아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같은 편법 경로를 통해 판사가 된 사람도 있다. 지난해 7월 경력법관으로 임용된 장모(36) 판사도 경찰 재직 중 휴직하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경우다. 사법시험과 로스쿨을 통틀어 현재 판사로 일하고 있는 경찰대 출신은 모두 36명. 경찰단계 변론이 강하다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 민에도 10여명씩 일하고 있다.

우수한 경찰 간부 육성을 위해 도입된 경찰대는 4년 전액 학비가 면제되고 의복ㆍ교재ㆍ일용품 등도 국비로 제공된다. 월 수십만원씩 품위유지비도 받는다. 대신 졸업 후 6년간 의무적으로 경찰공무원으로 복무해야 하지만 5000만원 남짓으로 계산된 국비지원액만 상환하면 그만둘 수 있다.

이날 재판부는 경찰 간부들의 로스쿨 편법 진학에 대해 “근절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지만 그동안 경찰 수뇌부의 인식은 반대였다. 지난해 국회의원들과 감사원이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로스쿨 편법 입학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찰관들이) 규정이 없어서 편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휴직하고 로스쿨에 다닐 수 있도록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임장혁ㆍ박민제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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