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소화가 안 되는 분들, 여행을 한 번 가보세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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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얼마 전에 제주도에 놀러 갔었는데 제주도에서는 약을 안 먹어도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편히 지냈어요. 그런데 집에 오니까 도로 아프네요."

오랫동안 소화가 안 되어서 나에게서 약을 계속해서 받아서 드시고 계시는 분이 하루는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것이 바로 기능성 위장장애 즉, 신경성 위장병이다. ‘신경성’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심리적인 상태와 관련이 많다. 실제로 이 병은 소화불량증 가운데 피검사나 내시경, 초음파, 컴퓨터 촬영 등의 일반 검사로 원인을 밝혀 낼 수 없는 경우에 ‘기능성 소화불량증’이라고 한다.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위는 자율신경의 영향을 받는다. 자율신경은 본인의 의지대로 제어할 수 없는 신경으로 감정이나 정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불안이나 우울, 스트레스, 긴장과 같은 자극은 자율 신경계를 자극해 위의 운동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환자들은 실제로 본인들은 아무 걱정도 없고 신경을 쓸 일이 없고 이제는 마음을 다 비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분처럼 여행을 가서 잘 놀 때는 전연 아프지 않았다면 그 자체가 중요한 진단의 포인트가 된다. 스스로 예민하다고 느끼지 않더라도, 스스로 걱정할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얼마든지 기능성 소화불량증을 앓을 수 있는 것이다.

기능성 소화불량증은 상복부 중앙에서 느껴지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통증 또는 복부 불쾌감이 주요 증상이다. 속쓰림이나 과도한 트림, 복부 팽만감, 구역질, 울렁거림, 위산역류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이 주기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고, 한동안 증상이 없다가 수주 또는 수개월 동안 다시 지속되기도 한다.

소화기관 문제나 특정 질환 때문에 생기는 기질성 소화불량과는 달리, 기능성 소화불량은 특별한 원인 질환 없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므로 치료가 쉽지 않다. 적절한 병원 치료와 함께 식이요법, 생활습관 개선, 규칙적 생활과 적당한 운동 등을 통해 증상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라면 필요에 따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약물치료의 경우, 약물의 선택은 기능성 소화불량증의 종류, 즉 궤양성 소화불량증이냐 운동이상형 소화불량증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궤양성 소화불량증은 내시경 검사에서 궤양이 발견되지 않지만, 궤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즉, 궤양이 있을 때처럼 속이 쓰리기도 하고 윗배가 불편하고 아픈 증상이 있다. 치료를 위해서는 궤양 치료를 할때처럼 위산 억제제를 사용한다. 반면 운동이상형 소화불량증은 식후 포만감이 빨리 나타나고, 속이 더부룩한 증세가 주로 나타난다. 위장의 운동 이상으로 음식물이 위에서 제때 배출되지 않고 지연되는 현상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위장운동 촉진제를 사용해 치료한다.

기능성 소화불량증 자체가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다른 질병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다만 재발이 잦아지면 생활 속 불편함을 겪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궤양이나 악성종양 등이 새로 발생한 경우에도 그 증상은 기능성 소화불량증과 비슷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자가진단은 절대 금물이다. 기능성 소화불량과 중병을 혼동할 수 있으므로 최소 1년에 한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6개월 동안 3kg 이상 체중이 감소됐거나 흑색변을 보는 경우, 또 음식물이 잘 안 내려가는 연하곤란, 빈혈, 구토, 배에 뭔가 만져지는 복부 종괴 등이 동반될 때는 반드시 내시경 검사 및 추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기능성 소화불량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과식이나 잠들기 2∼3시간 전 음식섭취를 피하고, 자극적인 음식이나 지방이 많은 음식, 술, 담배 등도 삼간다. 일반적인 식이요법을 따르기보다 본인이 먹고 나서 고생하고 힘들었던 음식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가급적 그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고, 음식은 천천히 오래 씹어 먹는다. 침 속에는 아밀라아제라는 당분 분해 효소가 있어 음식물과 침이 잘 섞이면 소화가 잘되기 때문. 한편 기능성 소화불량의 경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 증상이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스트레스를 되도록 줄이고, 규칙적인 생활과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요가나 명상, 걷기 등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

☞ 민영일 원장은...

우리나라 내시경 역사의 산 증인이다. 전 아산병원 소화기센터장으로 정년 퇴임한 후 현재 비에비스 나무병원 대표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자 내시경 시술을 처음 시행하고 전파한 의사이자 내시경 관련 다섯개 학회 모두 학회장을 역임한 유일한 의사이다. 서울대 의대 내과 졸업 후 아산병원에서 오랜 교수 생활을 하며 의사들이 뽑은 '위장 질환 관련 베스트 닥터'로도 선정된 바 있다. 특히 환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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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일 기자 webmaster@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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