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포커스

북핵 문제 급하지만 ‘나쁜’ 정책은 피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기사 이미지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평양의 탄도미사일·핵무기 실험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북한 핵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려고 과거에 실패한 정책까지 재론하고 있다. 북핵 위기에 냉철한 현실주의로 접근하려면 다음 주장들을 점검해야 한다.

첫째, 지금은 평양과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을 시도할 때라는 주장이 있다. 워싱턴에 있는 우드로윌슨센터의 두 저명 학자들이 9월 30일자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이 구상을 다시 내놓았다. 미국이 북한에 압력만 가했을 뿐 외교는 시도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기고문이다. 실상을 보면 북한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95년 북·미 기본합의서, 2005년 6자회담 합의, 2012년 2월 29일 ‘윤달 합의’ 등 외부 세계와 맺은 모든 합의를 위반했다. 김정은 정권은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고 공언한다. 북한은 오로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협상에만 관심이 있다.

두 번째는 선제공격이다. 미국에서 소수파의 주장인데 동조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이나 도쿄처럼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서 살고 있는 전문가들은 선제공격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외교는 실패했으며 북한이 미국 공격 능력을 확보하기 전에 북한을 저지해야 한다는 게 이 주장의 논리다.

기사 이미지

물론 모든 종류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선제공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향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에서 어떤 탄두가 사용될지 미국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제공격 주장은 북한이 강행할 수 있는 보복전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반면, 북한 ICBM 능력은 과대평가한다. 북한 ICBM은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위협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냉전 시대에 소련의 ICBM 위협 속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아시아 동맹국에 핵우산을 제공했다. 핵탄두를 장착한 북한 ICBM은 심각한 위협이 되겠지만 눈앞에 닥친 위협이 아니라면 선제공격이 필요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셋째, 중국과 흥정하자는 주장이다. 일부 고위 관리나 정치인들은 중국을 ‘매수’해 북한에 압력을 넣으면 해결된다는 생각의 유혹에 빠진다. 일부는 이를 위해 미국이 대만이나 인권, 혹은 일본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미 외교협회(CFR)의 태스크포스는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겠다’고 중국에 약속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정책에서 전제는 한·중 관계를 보다 우호적으로 만들면 베이징이 북한에 압력을 넣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이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박 대통령의 전화 통화 요청을 거절했다. 그 어떤 ‘미끼’도 ‘북한의 붕괴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배치되며, 압력을 가하면 북한을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중국의 시각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CFR 태스크포스의 몇몇 멤버는 비무장지대(DMZ) 이북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는다고 중국에 약속하는 구상에 반대했다. 중국의 마음을 바꾸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필사적이라고 보이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중국에 ‘구애’해도 별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현 상태를 중국이 방관하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전개를 결정했다. 중국의 대북(對北) 정책은 진퇴양난이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한국·일본이 직접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다음에야 움직일 것이다.

네 번째 주장은 강제력을 통한 정권교체다. 수십 년 동안 정권교체는 좌절감에 빠진 대북 정책입안자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됐다. 20여 년 전 클린턴 행정부는 미 의회에 북·미 기본합의를 설득하려고 ‘북한 정권이 먼저 붕괴할 것이니 경수로를 건설할 일은 없다’는 주장을 조용히 유포했다. 부시 행정부의 일부 강경파는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을 받아들인 것 또한 북한 정권의 붕괴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일부 전문가는 적극적인 정권교체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동일한 문제가 남아 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현 상황에서 미국은 어떤 정권교체 수단을 확보하고 있는가.

현실은 이렇다. 지금 그 어떤 그랜드바겐도, 과감한 초정밀공습도, 기발한 외교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어느 날 갑자기 멈추게 할 수 없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은 대북 억제를 강화하고, 위험한 핵 관련 기술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 중국이 대북제재를 실행하도록 압력을 넣고, 북한의 행위에 따른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결국엔 평양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길은 어려운 길이며 어떤 때는 위험한 길이 될 것이다.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은 앞으로 몇 년간 우리의 현실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