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는 증시의 유용한 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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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미약품 주가폭락으로 공매도가 화두로 떠올랐다. 계약 파기 공시에 뒤이은 주가 하락에 공매도 세력이 한몫했다는 것이다. 공매도를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空賣渡’, 즉 없는 것을 판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법적으로 인정된 공매도는 빌려온 주식을 미리 팔고 나중에 매수하여 상환하는 ‘차입공매도(Covered Short-selling)’다. 흔히들 공매도 행위를 ‘증시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부르지만 ‘무차입공매도(Naked Short-selling)’가 아니기 때문에 억울한 별명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한미약품 공시와 관련된 옳고 그름은 감독당국에서 조사를 거쳐 밝힐 테니, 여기에서는 그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도록 하자. 다만, 주가 하락의 직접적인 이유로 지목된 공매도에 대해서는 조금 관심을 가지고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태윤 NH투자증권 대안상품개발부장

국내 주식시장에서 악의 축처럼 여겨지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선진국은 공매도의 여러 순기능을 인정하여 공매도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첫째, 공매도는 시장의 조절 기제로써 역할하며 가격의 왜곡을 해소하고 변동성을 완화한다. 말하자면 오르는 주가에 소금을 치는 역할인데, 거품 형성과 그에 수반되는 대폭락을 미연에 방지한다.

둘째,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하여 전체 거래량을 증가시킨다. 주식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서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

셋째, 우리나라의 공매도 제도는 차입공매도만 허용하기 때문에 판 다음 다시 사들여야 한다. 주식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샀다가 파는 행위와 순서만 뒤바뀔 뿐, 수학적으로는 똑같은 행위이다. 즉, 모든 공매도 물량은 언젠가 커버되어야 한다. ‘숏커버’ 물량이 쏟아져 나올 때 시장은 다시 상승 탄력을 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공매도가 주식 가격을 하락시킨다는 주장은 ‘조삼모사’격인 셈이다.

넷째,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견인한다는 것이 통념이지만 금융당국이 공매도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업틱룰(공매도를 할 경우 시장가격 밑으로는 호가를 낼 수 없도록 하는 규정)’로 인해 주가를 떨어뜨리면서 주식을 팔 수 없다. 이처럼 공매도가 금융시장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십분 감안해 대표적인 지수산출 기업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경우 선진국지수 편입의 평가항목으로 공매도와 주식대여를 중요시하고 있다. 공매도 법제화 여부가 시장 성숙도를 측정하는 항목 중 하나로 인정받는 것이다.

무수한 오해와 편견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사실 공매도(Short-selling)란 주식시장의 수많은 도구 중 하나이다. 주식투자의 본질은 결국 싸면 사고 비싸면 파는 것인데, 공매도는 이 단순한 진리를 이행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공매도란 시장에는 추가적인 유동성을, 투자자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상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이 공매도도 현명한 투자자에게만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세상 모든 적극적 투자전략이 그러하듯이 공매도 역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도구 자체가 악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신화도 오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공매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투자가가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공매도를 자유롭게 구사하고(실제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주식 펀드는 공매도를 할 수 없다), 개인은 공매도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개인투자자들은 지금껏 칼만 가지고 싸워야 했다는 점이다. 항상 살(Buy) 수밖에 없었고, 장이 급락하면 손절매하거나, 버티거나(Hold), 최선의 경우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바뀌어 가고 있다. 실제로 이제 국내 증권사에서 개인도 공매도를(한국뿐만 아니라 일본ㆍ홍콩ㆍ미국 시장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기관투자가들이 공매도를 통해 구사하던 롱숏 전략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공매도가 나쁘냐 나쁘지 않으냐가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에게만 그 문이 닫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제2, 제3의 한미약품은 언제고 다시 나타난다. 이제 개인도 사고 버티는 전략에서 벗어나, 시장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는 도구가 생겼다. 공매도는 시장에 순기능이 많은 중요한 도구이다. 이제 공매도 자체에 대한 논란에서 벗어나, 이러한 도구를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장 환경 조성에 좀더 관심을 기울일 때라고 생각한다.

이태윤 NH투자증권 대안상품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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