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탁구」에 맺힌 한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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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타도중공」의 꿈이 이렇게 빨리 실현될줄은 몰랐습니다. 우리팀의 선배·동료들이 잘 싸워주었고 평소 연습을 충실히 한 덕에 끝까지 흔들리지않고 게임을 이끌어 갈수 있었던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던것 같습니다.』
한국남자탁구가 중공의 벽을 깬 감격의 순간 마루바닥에 벌렁 누워 따라 뛰어든 코치· 감독·임원들과 한데 엉켜 얼싸안고 펑펑 눈물을 흘렸던 한국탁구의 히어로 안재형 (21· 동아생명) 은 코트밖으로 나와 눈물을 닦자 평소의 차분함으로 돌아갔다.
1백80㎝, 70㎏. 탁구선수로서는 드물게 덩치가 큰 안재형이 「타도중공」을 목표로 설정한것은 83년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부터.
5월에 열린 동경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중공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5-1로 참패했다. 안선수는 기필코 자신의 손으로 중공을 꺾으리라 마음을 다졌다.
그러나 85년4욀 스웨덴 외테보리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안선수는 마지막 단식선수로 나가 단식 우승을 차지한 중공의 강가량에게 지고말았다. 한국팀은 5-4로 뒤져 9∼10위전으로 밀려났다. 또한번 그의 가슴에 한이 맺혔고 안선수는 더욱 마음을 굳게했다.
「타도중공」 의 목표를 이번 아시안게임으로 정하고 지난해 7월부터 기흥전용체육관에서 실시한 국가대표합숙훈련에 그 어느선수보다도 열심히 연습에 몰두했다.
하루 6시간의 고된 훈련에도 불구, 아침에는 어느선수보다도 일찍 일어나 3㎞의 로드웍으로 하체를 단련했으며 연습이 끝난후 저녁에는 혼자 경기장에 나와 연습기를 상대로 리시브와 스매싱을 연습했으며 매일 5백개의 서비스연습으로 서브를 강화시켰다.
온몸과 마음을 다 쏟은 연습은 마침내 24일 중공과의 대결에서 믿어지지 않는 결과로 나타났다.
첫단식에서 세계4위인 「탁구의 마술사」 진신화를 2-0으로 가볍게 제친후 두번째 단식에서는 세계챔피언인 강가량을 역시 2-0으로 완파, 외테보리의 패배를 보기좋게 설욕했다.
마지막단식에서 혜균(세계22위)을 꺾어 「중공킬러」로 등장하며 한국탁구를 세계최강으로 올려세웠다.
『이번에 중공선수를 이겼다고 또다시 이들을 꺾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얻은 것이 있다면 이제는 중공선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게되었다는 사실입니다.』안선수는 이번의 승리가 중공타도의 첫걸음이라며 겸손해했다.
전남고흥 태생인 안선수가 탁구선수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것은 부산광성공고 3학년때부터인 83년.
전남대서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탁구를 시작한 안은 당시 국민학교 최강인 부산영선국교로 옮겨 본격적인 탁구를 연마했다.
국민학교 종열선수권대회 단식에서 우승, 부산난중으로 진학한 안은 종별대회에서 또다시 우승했으며 부산광성공고· 실업에서도 계속 종별대회에서 1위를 차지, 국가대표선수로 자라났다.
안선수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아버지 안경씨 (51·부산부민국교교사) 는 몸이 허약한 아들에게 탁구를 권유했으며 연습이 힘들어 그만두겠다는 아들의 말에『남자가 의지가 약해서 무얼 하겠느냐』 고 호통, 오늘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안경씨는 방학때면 아들이 출전하는 대회에는 빠짐없이 구경나가 응원하는 열성.
부산시당리동532 협진태양연립6동507호 안선수의 집에는 24일밤 안선수의 어머니 송영희씨 (46) 와 여동생 수진양(17·서강여고2년)모녀가 TV를 지켜보다가 승리의 순간 서로 껴안고 어쩔줄 몰라했다.
안경씨는 이날마침 숙직이어서 학교에서 TV를 보고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해온 재형이 탁구가 10년만에 성공을 거뒀다』며 『크나큰 보람을 느낀다』 고 말했다.
안씨는『재형이가 평소 말이 없고 차분한데다 무슨 일에나 집념이 강해 탁구를 손에 댄 뒤에는 오로지 탁구에만 정신을 쏟았다』고 기뻐했다.
경기장에서는 승부근성이 뛰어나 파이팅이 좋은 안선수이지만 집안에서나 선배들에게는 예절바르고 후배들에게는 자상스러운 면을 갖고있는 내성적 성격. 명예로운 은퇴와 함께 훌륭한 탁구지도자가 되는것이 안선수의 소박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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