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이렇게 염치가 없어도 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사 이미지

김성탁
정치부 차장

의경 지원자가 운전 연습을 해 ‘코너링의 달인’이 되면 경찰 고위직의 운전병이 될 수 있을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4일 국정감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을 서울경찰청 차장의 운전병으로 뽑은 실무자의 답변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는 “북악스카이웨이 주행 때 특히 코너링이 좋았다”고 선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한 해 의경이 되는 1만4000여 명 중 운전을 잘한다고 그런 보직에 갈 확률은 희박하다. 추천을 받아야 테스트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실무자는 “(우 수석 아들에 대해) 누군가의 소개를 받았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방송과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국감인데도 이렇게 처신하는 공직자들을 보면 염치가 너무 없다는 느낌이다. 문제점이 노출되더라도 어떻게든 지나가면 된다는 식의 태도가 해당 조직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요즘 이런 현상이 특히 잦다. 경찰의 경우 이철성 경찰청장이 1993년 음주운전 사고를 냈지만 경찰 신분을 속인 것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청장은 야당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조사받을 때 부끄러워 신분을 밝히지 못해 징계기록이 없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4·13 총선 때 일부 정당은 최근 10년 내 음주운전 적발 기록이 있으면 공천에서 배제하는 원칙을 세울 정도였다. 음주 사고 때 신분을 속이고도 음주단속을 하는 공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판단 역시 염치가 없긴 매 한 가지다.

대기업들이 많게는 수십억원씩을 냈다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한 여권의 태도도 그런 인상을 풍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방송기자클럽토론회에서 “전경련이 1년에 사회공헌을 위해 걷어 쓰는 돈이 2조원 ”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천안함 폭침 당시 3일 만에 몇 백억원, 세월호 때 900억~1000억원 가까이 모금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대북 물자를 지원한다고 할 때도 신속하게 전경련이 돈을 걷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전 정부가 하던 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뉘앙스였다. 이 대표는 “고소·고발할 사안이 있으면 하면 되는데, 지금 시대에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전 정부에서도 비선 실세의 개입설이 제기됐다면 질타가 쏟아졌을 것이고, 여당 대표라면 부적절한 관행은 없었는지 점검할 일이지 오히려 큰소리칠 일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정말 고발전이 벌어지고 있다.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유족을 상대로 한 보수단체가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족들이 치료를 거부해 백씨가 숨졌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가 사라진 세상에선 상을 당한 이들에게까지 고발이란 화살이 날아간다. 노무현 정부가 끝난 이후 국정홍보처 직원이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말해 논란을 낳았다. 이 정부가 끝나면 공무원에게 영혼이 생겼다는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더라도 버티면 된다는 영혼일까 두렵다.

김성탁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