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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시련딛고 「민주」궤도에|홍성호특파원, 서구3국 「민주화현장」을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발칸반도의 그리스 이들 3국은 서구에 속해 있으면서도 선진유럽 수준의 정치·경제를 항유하지 못한채 뒤떨어져왔다. 같은 대륙의 이웃 국가들로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은 모로코나 터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피레네산맥과 그리스로부터 시작된다』는 조롱을 받을만큼 격차가 심했던 원인은 무엇보다도 장기 군사독재에 있었다고 할수 있다. 70년대 중반 비슷한 시기에 독재자의 사망 또는 혁명을 통해 자유를 되찾은 이들 3국은 그후 10년남짓 함께 민주화의 기를 걸어왔다. 그사이 때로는 공산화에 대한 우려와 또다른 군사독재의 위협이 이들 나라의 장래를 어두운 것으로 생각하게 한적도 있지만 지금은 차츰 시련을 극복하고 전통적인 서구의회민주주의 기틀을 다져가고 있다. 또한 선진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EC(구주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성숙된 부국으로의 도약을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세계 각대륙에 번지고 있는 민주화추세에 하나의 표본으로 제시될수 있는 이들 나라의 민권회복과정과 현재의 상황등을 홍성호특파원의 현지취재를 통해 살펴본다.
수도 리스본의 중심가 마르케스 드 폼발 광장에서 리베르다드(자유) 거리를 걸어 내려가노라면 거리 양쪽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한창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뛴다.
시내를 벗어나 포르투갈 제1의 항구이자 교통중심지인 포르토로향하는 국도는 이나라의 첫 본격 고속도로가 50㎞쯤 진척된 상태에서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년 1월 성사된 EC 가입이 가져다준 뒤늦은 개발붐-경제부흥의 물결이 대서양서단에 와닿고 있는 것이다. 「서구사회의 미숙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을만큼 포루투갈이 낙후성을 면치못한 것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반세기동안이나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불과 10여년전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아직도 「민주주의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보의 도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리스본거리를 온통 덮은 정치벽보들.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많이 붙어있다.
반세기 동안이나 계속되던 「살라자르」독재가 무너진지 12년이 됐지만 포르투갈사람들은 아직도 과거의 폭정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사회민주당은 물론이고 사회당·중앙민주사회당·인민민주당등의 이름은 결국 독재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 민중을 의식하여 저마다 과거의 우익독재와는 거리가 멀다는것을 강조하기위해 붙였다는 이야기.
혁명 초기의 민주대중당이 이름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꾼뒤에야 직권이 이루어졌다는 우스개 같은 얘기도 있다.
74년 쿠데타이후 지금까지 줄곧 단일정당에 의한 집권이 어려웠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단일 정당의 집권은 자칫 일당지배, 나아가서는 독재로의 접근가능성이 있기때문에 권력 분산을 통한 상호견제상태의 존속을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투갈이 현재 「실바」수상의 사회민주당과 중앙민주사회당의 연정에 공산당이 지원한 사회당출신의 「소아레스」대통령을 갖고 있는 집권형태도 이런데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분산의 염원은 국민대다수의 마음속 뿐만 아니라 76년4월에 채택된 새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5권분립이 그것이다.
대통령과 국가위원회·입법·사법·행정등 5개기구에 권력을 골고루 나누고 대통령중심제가 내각책임제에 가미된 의회민주주의를 택하고있는 것이다.
입후보는 개인별로 하되 투표는 정당에만 하게 되어있고 득표율에 따른 전체비례대표제, 소위 Pot-System을 도입함으로써 선거에서 개인후보가 부각되는것을 철저히 봉쇄해 버린 것이다.
혁명후 지금까지 12년동안 16차례나 내각이 바뀌는 이른바 회전 도어식 정권교체(Revolving-Door Syndrome)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것도 국민들의 정치의식측면에서 본다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수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그러나 이같은 정치역정을 「시행착오」라는 부정적인 말대신 「민주주의 연습」이라고 표현했다.
혁명초기 군부가 좌 우로 나뉘어 정권장악을 위해 잇단 쿠데타로 정부가 엎치락 뒤치락하던 시절은 이미 흘러갔다. 혁명초기부터 결정적 영향력을 갖고있던 군부도 더 이상 권력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때 유럽에서는 이례적으로 정권을 인수할만큼 득세했던 공산당도 점차 그 세력을 잃어가고 있다.
리스본에서 발행되는 국영신문 가운데 최고권위를 인정받는 디아리오데 노티시아스지의 「안투네스·페레이라」 편집국장(48)은 포르투갈이 서구열강과 대등한 경쟁을 하기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을 기다려야 하듯이 민주주의 또한 기초를 닦는데 드는 기간은 절약할 수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포르투갈은 70년대까지 아프리카 여러 곳에서 식민종주국으로서의 외세를 떨치며 착취한 자원으로 세계 유수의 금보유국이 되었고, 에스쿠도화가 유럽 최고의 가치를 지닌 적도 있었다.
포르투갈은 그러나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통치방식 때문에 내부체제가 경직되어 다른 서구국가 같은 체제발전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결국 48년의 장기군사독재 끝에 서구사회에서 마저 고립되었다가 74년에 들어서야 민권회복과 식민지 행방을 부르짖는 청년장교들에 의해 자유의 숨통을 트게 된다.
그러나 이 새역사의 시발점에서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그 뿌리마저 송두리째 뽑겠다는 일념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국가재건을 앞당길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정권투쟁의 자우대립은 공산당 집권을 가져왔고 그에 따른 국유화정책과 토지몰수가 자본가와 대지주들을 국외로 몰아내는 결과를 빚음으로써 자본형성의 뿌리마저 뽑히고 만것이다.
80년대 들어서의 경제여건을보면 인플레가 22.4%(82년)∼29.3%(84년)에 이르고 무역적자 또한 51억달러(81년)∼31억달러(83년)악성실업이 11%, 85년9월까지의 대외부채가 1백50억달러로 인구비율로 볼때 EC의 하위권 국가들에 비해서도 심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현 「실바」정권은 「소아레스」전수상이 실시해온 긴축정책을 바꾸어 소득세감면. 국채발행에 의한 자금조달, 경기자극을 휘한 세축에 나서는 한편 국영기업의 민영화도 검토하는등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다.
정국면에서도 신임 「소아레스」대통령이 조당파적인 결속을 호소하고 나섰고 사회당과 사회민주당등에 경제테크너크래트들이 당수자리에 앉는등 정치와 경제를 한 궤도위에 올려놓고 이나라가 서구의 선진경제 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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