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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보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는 새로운 한국인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미국의 언론인 「조지·케넌」이 험담했던 『게으르고 더럽고 무식하며 자존심을 잃어버린 한국인』은 아니었다.
20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약동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함성을 지른 한국인은 모두 모두 새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다시 본 한국인은 미소짓고 있었다. 그처럼 맑고 깨끗하고 따뜻하게 웃는 한국인의 얼굴을 우리는 언제 보았던가.
웃음은 시켜서 되지 않는다. 우리는 비로소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웃는 어린이들, 청년들, 한국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또 보았다. 야생마가 갈기를 흩날리며 대평원을 가르듯 질주하는 한국인을 보았다. 아마 세계도 놀랐을 것이다. 멈칫거리고, 눈치 살피고, 가년스런 한국인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어기차게, 땅이 꺼져라 하고 지축을 울리며 뛰고 뒹굴고 발을 구르는 한국인이었다. 구름을 밀어낼 듯 한국인은 팔을 뻗고 솟구쳤다.
누가 이런 한국사람들을 보고 단점이 73가지나 되고 서두름, 조잡성, 과대망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다고 했는가.
하늘의 구름이 무겁고, 비가 차가와도 움츠리는 사람이 없었다. 보아란듯이 더 가슴을 펴고, 더 팔을 뻗고, 더 .힘차게 줄달음쳤다.
거기에는 지혜의 한국인도 있었다. 서울 아시안게임의 개막 축제는 한국인이 궁리하고, 한국인이 꾸민 행사였다. 그 넓은 무대를 넘치고 일렁거리고 살아 약동하게 만든 춤과 노래와 크고 작은 몸짓 하나 하나, 대하드라마와도 같은 연출, 모두가 한국인의 작품이요, 한국인의 생각이었다.
이 축전을 LA올림픽의 메모리얼 콜리시엄에 옮겨 놓은들 무엇이 모자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우리끼리 귀엣말로 칭찬해야할 한국사람들이 있다. 누가 보든 말든, 앞에서 뒤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아들, 딸, 대학생들.
이들은 시기, 질투, 열등의식, 공사 혼동, 책임감 부족, 적당 주의…투성 이라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오늘의 진짜 한국인은 찌들고, 무엇에 쫓기고, 화내고, 겉과 속이 다른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비겁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았다.
줄서서 광장에 들어가는 사람들, 차가운 스타디움 맨바닥에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보통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새로 태어난 진짜 한국인이었다. 절도와 자제와 질서는 남의 나라 사람들 것이 아니었다.
아시안 게임은 우리가 오래도록 잃어버렸던 우리를 다시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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