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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의 질」을 높여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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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시아경기대회를 불과 엿새 앞두고 터진 김포공항 폭탄테러사건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천려일실 이랄까, 바로 이러한 사건을 우려해 비상경계를 하고있는 가운데, 그것도 외국 선수·임원·보도진들이 속속 입국하는 김포공항에서 교묘하고 대담한 수법으로 40여명이라는 많은 사람을 살상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교묘하고 대담한 수법>
-현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읍니다. 1시간이 지난 하오 4시에도 현장에는 파편과 박살난 유리조각이 눈처럼 흐트러져 있는 가운데 사상자들의 피와 살점이 뒤엉겨 전장을 방불케 했읍니다.
-사고순간 「광」하는 폭음과 함께 피해자들이 5∼6m씩 날아가 떨어졌으며 희생자 중 공항관리공단 직원 유주식씨(42)는 하반신이 끊겨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공항당국은 사고 후 소방차를 동원, 굵은 호스의 센물줄기로 피범벅이 된 현장을 닦아 내야할 정도였읍니다.
-전국 경찰에 비상령이 내려진 가운데 이 같은 폭탄테러가 그것도 수도 서울의 관문인 공항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경비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 아닙니까.
-20여일 전부터 2인 1조의 무장전경이 공항청사 내부를 반복 순찰하고 사복경찰이 요소요소에 배치되는 등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그러나 벽 하나 사이를 두고 건물 밖은 경비가 허술했으며 국제선의 내국인 출구와 외국인 출구의 경비인원도 1대 4로 내국인 출구쪽이 허술했습니다. 범인들은 이점을 노려 사고지점에 폭탄을 장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완벽한 경비는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해 경호·경비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도 우리경찰은 양적으로 경비 인원만 늘렸을 뿐 질은 그대로인 구석이 많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0여일 전부터 실시하고있는 국제선과 국내선 진입도로 차량 검문만 해도 그렇습니다. 검문경찰은 차량이 밀리다보니 승객과 운전사의 얼굴만 한번씩보고 통과시켜 택시운전사들은 검문경찰을 「관상장이」라고 부릅니다. 관상장이 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얼굴한번 보고 테러분자를 가려내겠느냐는 것이죠.
-우리의 치안시책이 그 동안 학생대책에 지나치게 치우쳤기 때문에 범죄예방이나 수사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감이 있습니다.
특히 일반범죄보다 수법이 더욱 교묘하고 대담한 폭탄테러 등 특별범죄에 대해 연구·준비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고직후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경찰 등 관계기관의 자세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입니다. 이번 사고만 해도 폭발 후 공항경비대에 비상이 걸려 병력이 현장에 출동해 경계를 강화하고 수습에 나서는데 15분 이상 걸렸습니다.
또 관계기관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공항 측도 대합실 안팎에 1천여명의 이용객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는데도 상황설명이나 행동요령을 일러주는 안내방송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굴 한번만 보고 통과>
-사고발생 직후 구조작업도 매우 소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사고현장 근처에 있다가 구조에 나섰던 한 전경은 폭발직후 우리 시민들은 몸을 피한 채 얼른 나타나지 않았는데 한 미군병사가 먼저 달려와 허리띠를 풀어 지혈을 하는 등 응급처치와 구조에 나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사건 후 공항에 들른 정부 고위관계자들도 한결같이 경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후문입니다. 특히 다원화돼있는 현장 지휘체제 등을 거론, 질책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김포공항 폭발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5일 하오 선수촌 로비에서는 「솥뚜껑 보고 놀란 격」으로 해프닝이 벌어졌어요.
이날 도착한 중공 선수단 2진 취재에 보도진이 경황없이 뛰어다니던 중 검은 가방 1개가 로비 바닥 가운데 놓여있는 것이 발견돼 순식간에 장내가 발칵 뒤집혀 경찰이 달려오는 등 소동을 벌였습니다. 뒤늦게 가방임자는 모 방송국 기자로 밝혀졌습니다.
-검찰 일각에서는 이번 테러에 대한 초동대응이 너무 허술해 범인검거의 단서를 놓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범죄생리상 범인 중 적어도 1명은 멀리서라도 폭발현장을 확인하고 도주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죠.
-현재 몇몇 용의자를 수사는 하고있습니다만 사건은 우리 경찰로서는 경험이 부족한 폭탄테러사건 이어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경찰수사와 관련, 이번 사건발생 후 간략한 개요가 TV자막에 나갔는데도 당국이 5시간이 넘도록 내용을 발표하지 않아 시민들이 무척 불안해했습니다. 신문도 없는 일요일 하오 프로야구를 시청하던 시민들은 3시 40분쯤 TV화면에 「김포공항에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자막이 나온 것을 보고 계속 속보를 기다렸으나 7시 뉴스에도 한마디가 없어 9시 발표 때까지 신문사 전화통에 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큰 사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신속한 수사협조를 위해서도 사건개요를 즉시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중동선수들은 태연>
아수라장이 된 폭발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컬러로 카메라에 담은 사람은 사진기자 아닌 본사 애독자 서정환씨(39·명동 쓰리세븐 카메라점 경영)였습니다. 서씨는 이날 친구의 부탁을 받고 미국인 바이어의 출국장면을 찍어주기 위해 공항 2층 출국장에 도착해 카메라를 든 채 승용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음을 듣고 1층 현장을 폭격, 순식간에 24컷의 필름을 모두 찍어버렸답니다.
서씨는 친구와 미국인 바이어에게 양해를 구하고 즉시 중앙일보사로 차를 달려 필름을 전달했으며 서씨의 사진은 본사가 사례금을 주고 15일자 중앙일보 1면에 5단 컬러로 게재했습니다.
서씨는 폭발직후의 현장이 『부상자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피투성이 파편조각으로 마치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며 『지금까지 가본 촬영장 가운데 가장 리얼한 현장』이었다고 말하더군요.
-아시아경기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입국한 중공 「중국 신문사」 기자가 찍은 참사현장 사진도 본사가 입수, 사례금을 주고 게재해 중공과 사진교환의 선례가 됐습니다.
-15일 하오 본사 편집국에는 『잠실 주경기장에서도 시한폭탄이 발견됐다』는 제보전화가 걸려와 비상이 걸리고 현장에 달려가 확인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경찰과 조직위에서도 놀라 한때 긴장감이 돌았으나 허위제보로 판명됐죠.
-14일 하오 11시 55분쯤에도 『조총련계 조직』이라며 범인을 자처하는 30대 남자가 중앙일보로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8시 30분과 10시, 서울 시청앞과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사고가 날것이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죠.
-테러사건이 나자 일본 팀 임원들이나 선수들은 『어떻게됐느냐』고 묻는 등 관심을 나타냈으나 일반적으로 테러가 잦은 이란·이라크 등 중동에서 온 선수들은 『뭐 그 정도 갖고 그렇게 떠드느냐』는 표정이더군요.

<여야선 초당협력 다짐>
-사고 후 당국은 15일 상오부터 검은색 군복차림의 대 테러특공대원들을 공항청사에 투입, 이번 사고의 심각함을 느끼게 합니다.
-선수촌과 경기장 주변 경비도 눈에 띄게 삼엄해졌습니다.
-학생들 데모 때문에 시달려온 검찰의 공안담당자들과 경찰간부들은 이번 사건으로 운동권 학생들의 아시아경기대회 저지시위가 다소 수그러지지 않을까 기대하더군요.
-여당 측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폭력발본」을 강조하고 있어 혹시 여권에서 뭔가 준비하고 있는 카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야당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무슨 경성조치가 나오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더군요.
-그러나 여야가 표현은 다르지만 아시안게임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다짐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사소한 대립은 자제하는 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아뭏든 이번 사건의 교훈은 눈앞에 닥친 아시안게임을 완벽하게 치르는 것만 이 테러에 대한 확실한 응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정부와 경찰이 하루 빨리 범인을 잡아 사건전모를 국민 앞에 밝혀 놀란 가슴을 가라 앉혀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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