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과 자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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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4일 김포공항에서 일어난 폭발물 참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주위를 되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좀더 철저한 경계와 경비를 했더라면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런 일이 경기장 주변이나 선수들의 숙소에서 발생했다면 어떠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참사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완벽한 대비는 구호나 지시로 되는 것이 아니고 조용하고 빈틈없는 실천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포공항 사고는 전화위복으로 돌릴 수 있는 경종이 되었으면 한다.
아시안게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고 불안하게 하는 일이 비단 경계, 경비 문제만이 아니다.
국제적 대행사를 치르는데 국민을 너무 들뜨게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인상도 문제다. 마침 한강종합개발사업 준공을 기념하는 경축잔치가 1주일 째 계속되며 TV프로는 그것으로 넘쳤고 아시안게임을 밝힐 성화봉송이 시작되면서 이 행렬이 지나가는 곳마다 북 치고 춤추고 온 나라가 들썩들썩 하는 것 같다. 이 들뜬 잔치 판들은 꼬박꼬박 TV매체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중계돼 국민들의 마음도 둥둥 떠있는 기분이다.
이러한 경축행사가 무의미한 낭비만은 아니고 그런 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도문제다.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결국은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를 해이시켜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해이된 분위기는 오히려 짜임새 있고 실속이 있어야 할 아시안게임을 느슨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까 걱정이다.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외국에 주는 인상도 그렇다. 검소하고 짜임새 있는 행사를 치름으로써 근면·성실한 우리의 국민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옳다. 잔치기분에 흥청거리는 모습은 도리어 실속 없는 치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선수촌에 입소한 .외국의 선수·임원들에 대한 서비스도 친절한 것은 좋다. 게다가 널찍하고 화려한 침실과 산해진미에 『원더풀』이 연발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각종 서비스는 완전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고 하며 심지어는 외국선수 얼굴에 난 여드름까지 짜주고 있다고 한다.
미국같은 부자나라에서도 84년 LA올림픽 때 숙소가 비좁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였고 바가지 요금으로 흑자를 내지 않았던가.
「과공은 비례」란 말이 있듯이 분에 넘치는 친절과 서비스는 오히려 빈축을 사기 쉽다. 외국인에게 잘 보이려고 국민적인 자존심 마저 저버릴 수는 없다. 친절하되 의연하고 당당해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절도 있고, 활기가 넘치고, 생동하는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때마침 정치인들도 아시안게임 기간동안 중요한 국정을 멈추고 자숙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조용한 가운데 국제적 대행사가 원만히 치러지도록 협조하는 성숙한 국민상을 갖도록 해야겠다.
문제의 학생들도 이 기회에 민주시민의 한사람임을 스스로 나타내 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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