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그 마술적 유혹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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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의 로고 '사이렌'

#1. 사이렌(Sire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요정은 소리로 유혹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 출처를 상상하게 만드는 ‘소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의 매혹적인 음악소리에 마음이 현혹된 뱃사람들은 차가운 죽음의 바다로 향한다. 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조차 자신의 몸을 묶고, 선원들의 귀를 막아야만 했다.

이런 사이렌의 모습을 우리는 매일 아침 향긋한 커피와 함께 본다. 스타벅스 로고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파는 공간’으로 성공한 스타벅스는 녹색 바탕에 흰 사이렌의 모습을 새겼다. 사이렌이 음악으로 유혹하듯 커피로 사람을 매혹시켜 모두가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게 하겠다는 의도다. 스타벅스가 커피숍임에도 1공간인 집, 2공간인 회사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로고의 의미도 한 몫 했을지 모른다.

#2. 한 신인작가의 ‘깨어짐의 미학’이란 주제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여러 개의 조각상을 일부러 깨트리면서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연작이다.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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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apple)의 로고는 한 입 베어문 사과이다.

이런 ‘불완전함의 미학’을 드러낸 대표적인 것이 ‘애플’ 로고이다. 선악과라는 인간이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유혹’의 아이템을 로고로 했다. 그리고 사과를 의도적으로 조금 베어 물은 형태로 만들었다. 완벽한 것보다 조금 부족한 것이 더 끌린다는 것을 알았을 테다. 성경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하다’고 표현한 선악과는 시각과 미각을 자극할 뿐 아니라 만져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이폰’이 시각적 요소인 디자인 뿐 아니라 ‘터치’라는 촉각으로 감성 테크의 아이콘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 같다.

#3. 몰링(Malling)의 시대다. 몰링은 매력적이다. 마음가는 대로 돌아다녀도 된다. 가격에 따라 매장 위치가 달라지는 백화점과 달리 명품 옆에 SPA 매장이 있을 수 있다. 길을 잃어도 상관없다. 다채로운 유혹꺼리가 우리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클수록 하루에 정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탐험하듯 또다시 우리는 몰링을 하러간다.

몰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송인 JTBC는 ‘다채로운 즐거움’이란 표어에 부합하는 로고 디자인을 가졌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방송국 최초로 수상한 이 로고는 흰색, 분홍색, 초록, 파랑, 주황 등 다양한 색깔로 ‘다채로움’을 드러낸다. 장르별로 색깔의 조합은 다르다. 드라마는 분홍과 주황, 예능은 주황과 녹색, 교양은 녹색과 하늘색, 그리고 뉴스룸은 남색이다. 각각의 색채가 지닌 고유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장르를 할당해 ‘즐거움’에도 여러 빛깔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몰링은 즐겁지만 답답하다. 사실 포스트모던 건축 트렌드에서 몰(Mall)은 조금 벗어나 있다. 고대 그리스 건축물은 신전과 같이 ‘외부’가 중요했고,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교회 ‘내부’가 건축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포스트모던 시대에 와서는 ‘안(내부)’와 ‘밖(외부)’를 연결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니까 건물 ‘안’에만 있어야 하는 몰링은 답답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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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로고는 '다채로운 즐거움'을 나타낸다.

JTBC의 로고는 타방송사와 달리 ‘그라데이션 기법’으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색채 수치를 이야기 할 때 쓰이는 RGB(레드, 그린, 블루)를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스펙트럼이 워낙 넓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형화된 느낌이 아니라 더 자연스럽고 여운을 준다. 몰링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행복감’을 오디언스에게 선사하겠다는 의미로 로고의 의미를 해석해도 될 듯 싶다.

글=김유빈 기자 kim.yoov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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