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약방의 감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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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저씨! 물좀 주세요 .목이 타서 죽겠어요.』
3일 하오5시쯤 서울청량리로터리 교통초소를 지키는 경찰관에게 한복차림의 여학생이 달려와 갈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서울D여중2년 김모양(13). 서울시교육위원회가「오행운동실천및 계도활동」을 내세워 실시한 「아주대회성공다짐 캠페인」에 동원돼 로터리에 나와 섰다.
길거리 소녀들의 차림은 가관이었다.
「한복을 입고 등교하라」는 지시에 따라 김양은 장농 깊숙한 곳에 보관했던 겨울한복에 속치마까지 차려 입었다. 색동저고리 속에 T셔츠, 청바지 위에 치마, 고무신대신 운동화, 늦여름 도심의 가장무도회 마냥 우스꽝스런 차림으로 「억지춘향」의 표정을 짓고있는 소녀들.『새벽같이 나오느라 아침도 못먹었어요. 점심은 빵·우유로 때웠어요.』
『저는요, 겨울한복입고 거리청소 하러 새벽같이 나간다고 엄마걱정을 듣고 나왔어요.』 『엄마 걱정시킬 일이 또 하나 생겼어요. 엄마고무신이 작아서 발뒤꿈치가 까졌걸랑요.』
짜증스런 목소리의 갖가지불평들이 합창하듯 쏟아져 나왔다.
『오행정신 생활화로 문화시민 긍지 갖자.』
친절·예절·질서·봉사·청결의 5대 덕목 실천을 강조하는 피킷과 플래카드는 들고선 학생이나 지나는 시민들이나 관심 밖. 눈길도 주지 않았다.
상오7시30분∼8시30분, 방과후 하오4시30분∼5시30분 두차례 두시간에 걸쳐 실시된 이날 캠페인에는 서울시내 전 중·고교가 동원됐다.
오로지 전시밖에는 목적도 효과도 없는 것만 같은 거리캠페인. 과연 누가 누구를 의해하는 것일까. <김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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