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간첩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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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대 현직 교수를 중심으로 한 사제그룹의 간첩혐의 사건은 오늘의 우리 시국에 비춰 충격적이다.
이병설(48)이라는 지리학 중견교수가 75년 일본유학 중 조총련의 미인계에 걸러 간첩으로 포섭된후 귀국하여 저지른 사건이다.
서울대기숙사 사감교수인 그는 가까운 제자들을 모아놓고 서울정부를 비방하고, 평양정권을 찬양하면서 뒤로는 군사용 5만분의1 지도 1질 (2백15장)을 비롯하여 남한의 민주화운동·노동운동·군부동정 등에 관한 상황을 조총련에 보고했다.
그는 또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그들에게 각각 「충성의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가 내외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는 이때 국립대학의 교수가 이런 행위로 적발된 것은 심히 개탄스러운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논란 속에 있다. 이럴 때 평양의 개입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북의 개입만은 철저히 봉쇄해야 한다고 믿어왔고 또 성공했다.
이번 간첩단의 행위가 비록 학원을 거점으로 하긴 했으나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침투하지 못한 채 뿌리가 뽑힌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재야·학생세력의 민주화운동과 평양에 의한 적화공작의 구별이 더 없이 절실하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이 점은 정부와 운동권이 다함께 명심해야할 사항이다.
운동권은 공산세력이 침투할 여지를 두거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전략·전술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화운동을 전 국민적 차원으로 확대시켜 건전한 발전과 성공을 보강하기 위한 대전제이기도 하다.
한편 정부는 민주화나 노동운동을 적색침투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다. 여기에는 운동권의 반정부적성격과 외부의 사주를 받은 반 국가활동의 구별도 포함된다.
지금의 주변정세는 우리의 민족적 단결을 지상과제로 요구하고 있다.
지방 대국이라는 미국은 경제압력을 부단히 강요하고 있다. 우리 시장은 점점 더 미국에의 개방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일본에선 성장된 경제력과 보수진영의 정치적 승리를 바탕으로 하여 대외침략을 기본속성으로 하는 국가주의의 모습을 노골화 해가고 있다.
소련은 다시 동아에서의 남하정책을 개시, 북한의 영공비행, 항구기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청일전쟁후의 구한말시대를 연상케 하는 상황들이다. 이럴 때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가 재단합을 저해하는 간첩활동으로 곤욕을 치르고 내부적 소요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평양은 민족 자해적인 간첩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대화를 통한 민족화합의 길로 나와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내부소요에 의한 국력의 낭비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도록 국민의사에 따라 민주화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간첩의 침투를 봉쇄하는 길임을 다같이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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