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안타까운 국감의 대북 선제타격론 공방

중앙일보

입력

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장. 2시간 30분 동안의 감사 내내 최대 이슈는 '대북 선제타격론'이었다.

정식 질문에 들어가기 전 심재권 외교통일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모두 발언부터 이 문제를 꺼내 들었다. 심 위원장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한반도에 대한 전면전 발발을 의미한다. 한민족 전멸의 대재앙이며, 결코 있어선 안 되는 검토"라고 못을 박았다. 감사장에 긴장감이 돌았다.

'대북 선제타격'이 거론된 계기는 지난달 16일 미 외교협회(CFR)가 주최한 토론회였다. 이 자리에서 마이클 멀린 전 미 합참의장은 "북한의 젊은 지도자(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을 미국에 쏘는 것을 놔둘 수 없다.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대나 과거 발사했던 곳을 제거할 수 있다"며 '선제 타격론'을 제기했다.

첫 질문에 나선 같은 당 설훈 의원은 "선제타격, 핵무장 식으로 가는 건 제대로 된 대처가 아니다.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다"며 "멀린 전 의장 외에 선제타격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누구냐"고 캐물었다. 원혜영 의원도 "(선제공격론으로) 전쟁 위험이 고조되는 건 우리 경제나 국제적 관점에서 좋지 않다"며 "미국의 선제타격론이 무절제하게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발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가세했다.

답변에 나선 안호영 주미대사는 "멀린은 이제 재야인사이며 선제타격을 해야 한다고 한 게 아니라 여러 옵션(대안)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던 것 뿐"이라며 "(미국) 학계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것도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또 "미 정부 인사 중에는 선제타격론을 말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의구심'을 떨구지 못한 듯 재차 확인을 했다.

"대사는 미국으로부터 선제타격론에 대해 협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심 위원장)
"없다." (안 대사)
"그럼 대북 선제 타격론에 한국 정부가 관여한 바 있느냐" (심 위원장)
"적어도 워싱턴에서는 그런 협의를 한 적이 없다."(안 대사)
"예방공격이든, 선제공격이든 어떤 형태이건 선제타격은 정말 우려스러운 결과를 한민족에게 가져올 수 있다. 전쟁의 참화가 없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달라." (심 위원장)

안 대사는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북한을 먼저 공습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반론을 전제하긴 했지만, "작전 사안의 하나로 '선제 군사행동(preemptive military actions)은 미리 논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정부 관리라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선제 타격론' 논쟁을 지켜보며 두 개의 허탈함을 느꼈다. 13시간 비행기 타고 온 국회 대표들이 미국 측 인사 한 명의 발언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휘둘리는 모습 자체가 허탈했다. 얼마나 우리가 북한 문제에 주도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국감에 나선 의원들 모두 말은 안 했지만 미국에서 제기되는 '선제 타격론' 자체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 본토를 위협하고 나선 북한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대처'란 사실이다. 그것이 더욱 안타깝고 허탈하다. 답은 이날 안 대사의 답변에 나와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기본 입장을 확실히 하고, 우리가 운전석에 앉는 게 중요하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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