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공공기관 무관심에 사라진 청년 일자리 3209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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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경제부 기자

한국철도공사는 2014년과 2015년 15~34세의 청년 786명을 채용했다. 적지 않은 인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철도공사는 2013년 개정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른 청년 고용의무제를 위반했다. 이 법에 따르면 2014년부터 공공기관(지방공기업 포함)은 매년 정원의 3% 이상의 청년(15∼34세)을 새로 고용해야 한다. 철도공사는 법에 따라 2년간 1680명의 청년을 신규로 채용해야 했지만 목표보다 894명이나 덜 뽑았다.

의무고용제 안 지켜도 그만
한 명도 안 뽑은 곳 수두룩

이런 공공기관이 한 둘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국토정보공사도 각각 356명, 109명을 덜 뽑았다. 지방공기업은 상황이 더 나쁘다. 서울도시철도공사(178명)·서울메트로공사(162명)·부산교통공사(137명) 등이 미채용규모가 컸다. 아예 단 한 명의 청년도 뽑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전체 공공기관이 의무고용 목표보다 덜 뽑은 사람은 2년 간 3209명에 이른다. 신보라 새누리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목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기관이 30%에 이른다는 건 고용부가 7월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미채용 규모가 드러난 건 처음이다. 3209명은 GS나 CJ그룹의 연간 전체 채용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청년 취업난 완화’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정부 정책방향에 역행하는 꼴이다. 대부분 ‘정원 충족’, ‘인건비 부담’, ‘업무축소·경영정상화’ 등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청년 의무고용제는 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제도다. 정원의 3%로 규모가 크지 않고, 일몰 조항이라 지속적으로 경영에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다. 경영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미채용 인원이 가장 많은 철도공사는 2014년 공사 출범 이후 처음으로 영업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1000억원대의 영업흑자와 함께 당기순이익도 흑자로 전환했다.

공공기관이 청년일자리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고용의무제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는 청년 의무고용 실적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 이게 유일한 유인책이다. 그러나 실익이 거의 없다. 경영평가에서 정부 권장정책 이행 항목의 배점은 100점 만점에 5점, 이 중 청년 의무고용 실적은 0.5~1.3점이다. 배점 자체도 적지만 이 범위 내에서 평가를 받는 공공기관이 스스로 가중치를 설정할 수 있다. 혹시나 청년 의무고용 실적이 좋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가중치를 최대한 높여서 점수를 끌어올리면 된다. 이 때문에 이행기관과 미이행기관의 점수 차이가 극히 미미하다. 심지어 2015년 경영평가에선 청년 의무고용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한국가스공사(0.7점)가 이를 충족한 한국지역난방공사(0.6점)보다 해당 항목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부실한 제도 설계에 미이행기관 비율은 2014년 27.9%에서 2015년 29.9%로 더 늘었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도 ‘이행 촉구’와 ‘명단 공개’ 외에 딱히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 의원은 “경영평가 반영 방식을 개선하고, 고용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지도·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원석 경제부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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