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밤낮이 따로없는 「장급여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밤 서울역삼동. 네온사인 광고가 거리를 밝힌다.
『양실·한실 완비, 물침대·회전침대·요지경거울 특별설치, VTR24시간 방영』
빨간 네온사인은 야릇한 호기심을 충동하며 행인들의 시선을 끈다.
4층건물의 G장. 러브호텔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7색유리자동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어서오십시요』 하며 20대 아가씨가 손님을 맞는다.
붉은색 고급카피트가 깔린 계단을 올라 긴복도 끝 객실로 안내된다.
5평크기 아담한 객실은 등나무 안락의자에 응접탁자, 한폭벽엔 「물침대」가 놓였다.
천장과 벽면은 모두 거울. 전화기·TV·VTR, 한폭에깔린 욕실엔 대리석바닥에 이탈리아제 욕조가 설치됐다.
물침대에 누워본다. 「인체공학상 신체 각 부위에 고루 압력이 가해져 최고의 쾌감을 맛볼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물침대. 가로1·5m, 세로2m, 높이 50cm. 마치 바닷가에 온듯 출렁인다. 파도소리같다. 독특한 감촉의 쿠션이 등과 허리를 간지럽힌다.
TV를 켠다. 폐쇄회로를 통해 방영되는 야릇한 도색영화다. 지하1층·지상4층·객실40실.평당 건축비만 2백50여만원. 호화빌라 분양가격과 맞먹는다.
물침대 (개당70만∼80만원), 요지경 거울(개당 15만∼20만원), 회전침대(개당 60만∼70만원) ,스팀베드 (개당 50만원)등 시설을 갖춰 총투자액 10억원. 그래도다른 어느 사업보다 수지가 맞아 업주 김모씨 (53)는 싱글벙글이다.
객실 이용료가 쉬어가기(낮시간 대여)는 물침대실 2만원, 보통객실 1만2천∼1만5천원, 잠자기 (숙박)는 물침대실이 3만원, 물 회전침대실 3만5천∼4만원, 보통객실 1만5천∼1만8천원.
서울역삼동·봉천동·장안동·천호동·화곡동 강서경찰서주변·중곡동 어린이대공원후문·방배동…. 서울의 곳곳마다 줄지어 문을 연 「러브호텔」 .
여행자들의 숙식이 아니라 은밀한 사랑의 장소를 찾는 남녀들을 위한 쾌락의 침실판매업이 낮도 밤도 없이 흥청인다. 70년대 부동산경기와 시기를 같이해 들어서기 시작한 이른바 「장급여관」이 그 주류지만 일반호텔·장급아닌 여관도 기능에선 대동소이.「낮시간 이용고객은 호텔2층에서 정중히 모십니다. 주간 이용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7시까지. 요금은 세금포함해서 1만2천원.」 무궁화가 4개인 K·Q관광호텔에도 대낮객실 이용 안내문이 엘리베이터안과 공중전화 박스옆에 나붙어 손님을 유인한다.
50여개 장급여관이 줄지어 늘어선 서울봉천동 전신전화국뒤편 러브호텔골목의 K장종업원 박모군(25)은 낮에 1시간쯤 쉬고(?)가는 손님도 많다고 귀뜀.
업소들은 출입자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하지 않도록 식당·코피숍등을 함께 갖춰 영업하는 곳이 많다.
깨끗한 시설은 분위기 조성의 기본이고 쾌락을 더해줄 실비경쟁에 근래 불이 붙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프링쿠션대신 물을 넣은 물침대, 버튼을 누르면 빙글빙글 회전하고 위아래가 따로따로 오르내려지는 회전침대, 요지경거울등 도색잡지의 토픽에서나 찾아봄직한 희한망측한 시설들이 다투어 마련되고 있다. 물침대가 없으면 손님이 발길을 돌린다는 업소측의 얘기다.
종업원인 박군은 피크타임엔 물침대방이 비지 않아 코피숍에서 기다렸다가 이용하는 손님도 드물지 않다고 말한다.
객실 35개의 K장은 하루손님이 1백40여쌍. 하루 방하나에 네쌍쯤 손님이 번갈아 든다는 설명이다.
거액이지만 일단 시설만 갖춰지면 하루 4회전으로 돈이 굴러들어오는 장사. 집값·땅값은 따로 올라 꿩먹고 알먹는 장사에 누가 눈을 감을 것인가.
8월말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장급여관은 8백53곳. 80년의 3백70곳에 비해 2·3배가 늘어났지만 손님은 더밀리는데 향락서울의 실상이 드러난다.
러브호텔 운영방식은 룸살롱과 비슷해 업주는 나타나지 않고 사장·지배인을 두어 간접경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집을 지어 경영하기도 하지만 지어진 건물을 세얻어 경영하기도 한다.
직접 지어 운영하는 사람은 부동산투기로 떼돈을 번 졸부들이 많다. 임대 사업자는 퇴직공무원·회사원·여관업계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다수.
러브호텔의 경기탓에 영업수입 못잖게 시설자체의 값도 호된 거액인데다 오름세. 대지2백평에 건평3백50평, 4층에 객실30개인 봉천동의 S장은 시세가 8억원, 객실40개인 이웃C장은 10억원을 호가하는등 러브호텔 사장님들은 줄잡아 10억대 부호.
세를 얻을 경우 3∼4층규모가 임대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2백만∼3백만원, 전세는 1억원선이다.
이같은 투자에 비해·수입은 목과 객실수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평균 방하나에 6만∼8만원. 역삼동 G장의 경우 객실 40개에 하루 4∼5회전씩 손님을 방아 하루수입이 2백50만∼3백만원이다.
그래서 러브호텔을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없다는 부동산업자들의 말.
먹고 마시는데로 마구 쓰여지는 돈은 또 찰나의 쾌락을 위해서도 무제한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최일섭교수 (사회복지학)=현대사회에 있어서 가족의 기능이 약해지고 성모럴이 문란해진데다 정치·사회적인 불안요인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순간적인 향락에의 탐닉을 유도하고 이것이 소비측면에서 무절제로 나타나 러브호텔을 찾게된다.
매스컴의 지속적인 계도나 학교교육을 통해 건전한 성의식 정립을 위한 캠페인을 강화하고 건전한 여가수단을 개발해 특히 가족과 함께 즐길수있는 가족 중심의 건전한 놀이문화를 집중적으로 함양해야 한다. <도성진·최천식기자><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