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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예측에 도전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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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이정헌 기자 중앙일보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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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도카이(東海) 지역 지진 관측 데이터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2~3일 안에 시즈오카(靜岡)현 중서부 일대를 진원으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전망이다.” 지난달 1일 일본 지바(千葉)현 후나바시(船橋)시 도시계획과 직원이 5대의 무전기를 번갈아 들며 다급하게 외쳤다. “지진 방재 응급 대책을 실시하라”고 철도회사 등에 통보하자 “경계 선언 발령을 수신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태평양 연안 스루가 만에서 강진이 예상되는 긴박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다.

일본 정부는 1978년 대규모 지진대책 특별법을 만들었다. 지진의 전조를 파악할 경우 총리가 신속하게 경계 선언을 발령한다. 신칸센과 일반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은 사고를 막기 위해 운행을 중단한다. 백화점 등 대형 상업시설도 문을 닫는다. 지진해일과 산사태가 우려되는 지역의 주민들은 지정된 장소로 대피한다. 법 제정 당시 규모 8 정도의 지진이 스루가만에서 발생하면 약 9200명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예측됐다.

시즈오카현 오마에자키(御前崎)시 지하 200m 암반에는 지진의 전조를 찾는 변형계가 묻혀 있다. 지각 변동을 24시간 감시한다. 일본 기상청은 27개 관측점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데이터를 분석해 도카이 지진을 예측한다. 사전 방재훈련도 변형계의 정확한 측정과 기상청의 신속한 분석을 전제로 실시된다.

지진 사전 예측은 인류의 소망이다. 2~3일 전이 아니라 최소 2~3시간 전에만 파악해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막지 못한다고 해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65년 ‘직전 예지(豫知)’를 목표로 내걸고 도전에 나섰다. ‘전조 현상을 잡으면 지진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일본 정부와 지진 전문가들은 예측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큰 고민에 빠졌다. 지난 6월 고노 다로(河野太郞) 당시 방재상은 “예지의 정밀도가 향상되지 않고 있다”고 시인했다. 사전 예측을 전제로 만들었던 지진 대비책의 재검토와 대규모 지진대책 특별법의 폐지까지 배제하지 않는다는 뜻도 밝혔다. 95년 한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올해 4월 구마모토 지진까지 모두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 현재 과학으로는 지진의 전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진대국 일본의 솔직한 고백이다.

경주 지진 이후 한국에선 예측 가능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개미와 숭어의 집단 이동이 전조였다는 소문이 나돈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 지각의 급격한 변화가 지하수 수위와 라돈 등 방사성 기체의 수치를 상승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지진 발생 시점과 장소 예측은 힘들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두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진 예측에 매달린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엉터리 관측 장비 교체와 부실한 방재 시스템 정비, 내진 설계 강화 등 철저한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 정 헌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