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화 성공해야 군축도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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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북아시아에서의 군비경쟁과 군비통제』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회의가 28일 서울힐튼호텔서 열렸다. 한국국제정치학회 주최로 29일까지 열리는 이 회의에서 발표된 연세대 안병준 교수의 북한의 군비문제에 관한 논문을 간추려 소개한다.
한반도에 있어서의 군축은 남북한과 그 우방을 포함하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미소간의 군축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남북한은 분명한 군축 안을 제안하고 있지 않으며 통일정책이나 기타 남북관계에 대한 제안 속에서 군축 안의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 그 내용도 대부분 선전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상대방의 입장을 탐색하는 군축제안이나 회담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비교적인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의 제안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중심으로 하는 매우 선전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이에 반해 한국은 불가침협정 등의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려는 길을 모색해 왔으며 무력사용의 금지 등을 강조해 왔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 ▲양측 전체병력을 각각 10만 또는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감축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기 위한 대미 직접교섭 ▲동북아에 비 핵 평화지역 설치 ▲남한·북한·미국 3자 정치회담 또는 3자 군사회담의 개최 ▲팀스피리트 훈련 및 기타 한미군사협력의 중단 또는 규모축소 등을 요구하면서 공세적 선전을 전개해 왔다. 한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달성하기 위해 불가침협정·내정불간섭·남북정상회담 및 기타 신뢰구축조치 등을 제안하면서 북한의 공세에 대처해 왔다.
이처럼 남-북한이 군축에 임하는 자세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북한은 미군철수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명서 미국과의 직접 회담을 요구하는데 반해 한국은 북한당국과 직접 대화를 성사시켜서 신뢰를 회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군축 안을 기타 정치 및 군사적인 쟁점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결과 남북한간에는 어떠한 제안이든 간에 그것을 토의하고 공동이익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면은 아직도 결여하고 있고 수많은 제안만 있어 왔다.
이 같은 상태의 근본원인은 남-북한 상호간에 불신의 장벽이 가로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일방은 상대방이 군사적 우위를 확보, 자신을 위협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사실 북한의 군사력은 양적으로 한국의 군사력을 능가하고 있으며 남북한이 미소와 갖는 안보관계는 군축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의 남북한의 군축은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소련이 한국과 북한에 대한 무기판매를 자제할 때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최근 소련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지원의 증대는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의 유지에 심각한 의문을 던져 주고 있다.
미-소 양국이 남-북한에 대해 무기판매를 자제하지 않으면 양측간의 군비경쟁은 가속되고 불안정한 군사적 균형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남-북한의 군축은 장기적으로는 양측이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룰 때 가능하다. 양측이 공존을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번영을 위한 상호협력방안을 실제적으로 모색하게 될 때 군축협상은 가능해질 것이다.
북한이 현실적으로 나온다면 전쟁재발과 우발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휴전선을 중심으로 신뢰구축방안이 토의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남-북 대화가 성공할 때 군축회담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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