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 내고 복지 누리는 연금 생활자 유치 전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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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예산이 자치구를 비롯한 기초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50% 이상을 웃돌게 되면서 기초 지자체 간 행정력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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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25개 자치구의 한 해 예산은 3500억~5500억원 선이다. 자치구마다 전체 예산 중 복지비 분담 비율이 다르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윳돈이 있는 자치구들은 지역 개발이나 공공시설 개선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자치구들은 최소한의 시설 유지 보수조차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기초지자체의 복지예산 대안은
상급 단체가 보조금 내려줄 때
쓸 수 있는 범위 자율권 넓히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복지 축소
‘복지 다이어트’ 고민해야 할 때

실제로 강남구는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기준재정충족도가 100%를 넘는다. 덕분에 서울시로부터 지원금(교부금)을 거의 받지 않는다. 서울시의 지원이 절실한 다른 자치구와는 큰 차이다.

자치구별로 예산 씀씀이에도 차이가 있다. 서초구와 송파구의 올해 ‘국토 및 지역 개발비’는 전체 예산의 3.2~3.6%(약 136억~165억원) 수준이지만 중랑구의 국토 및 지역개발비는 전체 예산의 1.1%(49억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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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병대 교수, 정광호 교수, 최영준 교수, 배인명 교수.

지역산업 진흥과 재래시장 활성화 등에 쓰이는 산업·중소기업비의 경우 강남구는 올해 20억원, 양천구는 28억원을 각각 편성했다. 강서구와 구로구·노원구 등은 전체 예산의 0.1%인 5억~9억원만 책정했다. 복지 수혜자가 많은 관악구의 산업·중소기업비는 7억원이다. 도로 건설과 관리, 주차정책 등에 투입되는 ‘수송 및 교통예산’의 격차는 더 크다. 강남구는 수송 및 교통예산으로 올해 114억원을 잡아놓은 반면, 중랑구는 41억원을 책정했다.

행정력 차이는 자치구 간 삶의 질 차이로 이어진다. 행정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시·구 복지 예산 비중이 상당히 늘어 시·구가 다른 사업에 쓸 ‘가용 예산’이 적다”며 “1967년부터 12년간 일본 도쿄도지사였던 미노베 료키치가 과도한 복지정책을 펼치다 재정 파탄을 맞은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복지비 지출로 인해 지방정부가 재정 위기를 겪은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한때 미국 최대 ‘자동차 산업 메카’로 명성을 떨쳤던 디트로이트 역시 자동차 산업 몰락과 과잉 복지 등이 겹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복지 부담 증가로 인한 지자체 간 행정력 격차 해소를 위해선 먼저 기업이나 담세력 있는 청년층, 연금 생활자를 겨냥한 유인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복지 부담 증가분을 기업이 고용을 창출하고 주민들이 세금을 납부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 플로리다주 등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연금 생활자를 전략적으로 유치해 정부 재정에 기여토록 하고 있다”며 “우리 지자체도 그런 주민 유입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라며 “복지 수혜자라도 일정 부분 납세를 하게 하는 방안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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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앙 50%, 광역 25%, 기초 25%’인 복지비 부담 포트폴리오도 재조정할 때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중앙정부가 조금 더 부담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필요하다”며 “기초 지자체에 지원되는 각종 보조금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서울시 관계자는 “꼭 필요한 복지정책만 시행하고 나머지는 줄이는 ‘복지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복지 선진국인 북유럽 국가의 조세 부담률이 40% 수준으로 20% 수준인 한국보다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세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 또 복지 수혜 계층에만 혜택이 집중되고 있다는 비난이 있어 증세는 당장 어려울 전망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자체 예산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주차장 등에 대한 적정 요금을 부과하는 등 수익자 부담 원칙 적용을 늘리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기·서준석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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