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J카페] 삐딱 시선으로 본 OPEC 감산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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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발(發) 깜짝 소식이 새벽을 깨웠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8년 만에 감산에 합의했다는 겁니다. 유가는 바로 오름세를 탔습니다. 시장에 정말 봄바람이 불게 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가깝지만 이번 OPEC 결정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전해 봅니다.

#체면만 살린 OPEC…진짜 감산 결론은 11월로
담합이 인정되는 유일한 시장이 있다. 바로 국제원유 시장이다. 이 담합을 주도하는 것은 바로 세계 석유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OPEC 국가들이다. 1960년에 출범한 OPEC은 원유 생산량을 조절하며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 OPEC을 주도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2014년 이후 지금껏 이어진 저유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상 최악의 재정적자 상황까지 맞이한 사우디는 최근 장관 월급을 20% 줄일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있다. 근래 서방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이 감산에 동의하지 않으면 합의는 없다는 애초 입장에서 물러나 이번 감산 합의를 이끌었다. 그만큼 절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투자은행 바클레이가 “체면만 살렸다”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셰일의 미국 vs 전통의 사우디
유전에 시추공을 뚫어 원유를 뽑아내는(pump) 펌프전쟁이 본격화한 것은 2014년부터다. 세계 경기 침체로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산유국들은 생산을 줄이지 않았다. 사우디가 이 싸움을 이끌었다. 미국 셰일혁명에 부딪힌 사우디는 패권유지를 원했다. 셰일오일은 오랜 원유탐사와 시추로 이어지는 전통의 유전개발 방식과는 다르게 생산된다. 셰일로 불리는 암석층에 흩뿌려져 있는 가스와 원유를 고압분쇄 방식으로 채굴하는데 미국이 이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서 값싼 원유와 가스 생산을 시작했다. 생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데다 유가가 50달러 선만 되면 수지타산이 맞는 셰일을 앞세워 미국이 수출에 나서기 시작하자 사우디로선 견제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산유량을 급격히 늘리자 유가는 폭락했다. 2014년 배럴당 115달러에 거래되던 원유는 올 초 27달러까지 폭락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마저 성장이 둔화하면서 수요는 급감했다.

공급과잉으로 유가가 폭락했지만 사우디는 8월까지 생산을 줄이지 않았다. 사우디가 주도한 이번 감산 합의의 가이드라인이 74만 배럴인 것을 두고 '미국 견제용'이라는 분석의 근거도 여기에 있다. 공급과잉 수준만큼 감산을 하면 유가가 빠르게 회복해 미국 셰일이 범람할 수 있으니 견제 가능한 양만큼만 생산을 줄이자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동부증권은 “감산 규모가 부족한 것은 유가가 너무 빨리 상승해 셰일오일 생산이 재개되는 것을 경계한 의도”라며 “OPEC은 향후 국제유가가 회원국 재정 안정과 셰일오일 견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배럴당 50~60달러)에서 등락을 이어가길 원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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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지는 비관론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도 비관론을 펼친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전 같은 고(高)유가 상황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골드먼삭스가 제시간 연말~내년 초 유가전망은 배럴당 43~53달러다. 바클레이도 “이번 합의는 추가적인 유가하락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바클레이는 OPEC이 꾸릴 특별위원회에 주목했다. O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산유국인 러시아와 미국 등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불명확한 부분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바클레이는 “언제부터 감산이 실효에 들어가 언제까지 이뤄져야 하는지 OPEC 비회원국과의 합의까지 이뤄져야 하는데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NH투자증권은 “유가가 5% 이상 급등한 것은 감산 합의뿐만 아니라 미국 내 원유 재고가 예상 외로 4주 연속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며 유가가 내년에 평균 50달러 대 초반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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