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파키스탄|야권 분열…실패로 끝날 듯|11개 야당 연합 응집력 부족|정부의 지도자 기습 검거도 치명타|사전 계획 부실…미 온건태도도 한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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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슬라마바드=이규진 특파원】연8일째 계속되고 있는 파키스탄의 유혈폭동사태는 예상외로 빨리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군의 투입효과도 있지만 「베나지르·부토」 여사를 비롯, 야당지도자들을 전격적으로 구금, 야당세력이 지도자를 잃고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지난14일 독립기념일을 기해 반정부폭동사태가 시작된 카라치 시를 비롯해 부근 타타·하라·주도 읍 등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던 신드 주의 주요도시에는 지난「일부터 군이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군과 경찰이 거리 곳곳에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 순찰을 강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20일부터 시위진압군은 그 숫자가 늘어 카라치를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을 뿐 지난 주말에 보였던 대규모 시위는 보이지 않았다.
야당세력의 연합단체인 민주회복운동(MRD)의 일부에서는 이번 주 들어 과거와는 달리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과 관련, 『이번 사태는 시기선택이 잘못됐고 사전계획도 치밀하지 못했다』는 자생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정치분석가는 당초 예상보다 빨리 시위가 진압된 것은『MRD 지도층이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시민들을 시위로 내몰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원래 MRD 지도부는 7월20일을 대규모 반정부시위의 첫날로 잡고 있었었다. 파키스탄에서의 정치계절은 전통적으로 농촌에서 수확이 끝나고 날씨가 가을철이 되는 9월이 관례였다.
이번 폭동사건이 시작된 14일은 공휴일인 독립기념일이었고 15, 16일은 이슬람 전통에 따라 모든 업무가 쉬는 날 이었던 데다가 공교롭게도「17, 18일은 이슬람 제2의 축제인 이드 데이(속죄일)가 겹쳐 있어 시기선택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게다가 정부당국이 기습적으로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베나지르·부토」여사를 비롯한 야당지도자 수백 명을 체포해 MRD는 사실상 사령탑이 무너졌다. 정부의 선제공격이 적중한 셈이다. 「부토」여사가 당수로 되어 있는 파키스탄 인민당(PPP)의 한 당원은『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당 지도자들)은 모두 체포됐고 우리들은 전날 지시 받은 대로 14일 아침 시위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83년 4백 여명이 사망한 반정부시위를 주도했던 MRD의 지도자「사다르·마자리」 는『정부의 야당지도자체포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며『보통 반정부시위가 절정에 달할 때까지 처음 며칠간은 시위참가가 저조하게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실망만 안겨 줬다』고 말했다.
카라치의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시위를 통해 정부로 하여금 계엄령을 재 발동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부토」여사의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빗나갔다. 현재 하지(성지순례)를 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무르고 있는 「지아」 대통령은 유혈 폭동사태가 일어났는데도 급거 귀국을 하지도 않았고 야당세력이 계산한대로 계엄령을 선포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지아」대통령의 태연한 태도가 오히려 야당세력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김을 빼 버리는 효과를 가져온 듯 하다.
미국 쪽으로부터의 관심표명도 미지근한 것이었다. 「부토」여사를 포함한 야당지도자의 체포에 대해서만 우려를 표명하고 조속한 석방을 요구했을 뿐 「지아」정권자체를 비난하는 성명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주네조」수상정부는 이 나마의 미국 쪽 반응에 대해서 내정간섭이라고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반정부시위가 실패로 돌아간 결과의 원인은 오히려 야당세력 연합체인 MRD 자체내의 분열에서 찾아야 될 듯하다.
지난 81년「지아」대통령의 계엄령에 항의해 결성된 MRD의 11개 야당 그룹은 MRD를 주도하는 PPP의 독주에 불만을 품어 갔었고 이념적으로나 지역적 연고가 달라 자체 내 분열조짐을 보여 왔었다. 혁신사회주의 정당인 PPP와 보수야당인 기타 소수정당사이에「지아」타도라는 공통점은 있었으나 그 밖의 응집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특히 지난4월「부토」여사가 귀국한 후 PPP내에서 보여 온 노장파와 소장파 사이의 분열은 MRD자체를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지아」대통령에 의해 지난 79년 처형된「줄피카르·알리·부토」전수상의 측근들이었던 노장파의 기수「자토이」씨는「부토」여사의 지도력에 불만을 품고 7월부터 신정당결성을 선언하고 PPP로부터 분리해 나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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