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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크낙산의 마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1975년 35세의 나이로 다소 뒤늦게 등단하여 활발한 창작 활동을 전개, 그 독특한 시세계로 거의 예외적일 정도의 집중된 비평적관심을 끌어온 김광규가 세 번째 시집을 묶어냈다. 『크낙산의 마음』이라는 제명의 이시집은 김광규의 시세계가 일관된 추구속에서 점차 원숙해지며 그 성취와 한계를 보다 뚜렷이 드러내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다수의 비평가들이 동의하듯 그의 시는 지적 성찰의 시다. 그는 현실세계의 개인적 및 집단적 삶의 양태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그에 대한 지적 성찰을 수행, 그 결과로 평이한 일상 언어에 의한 산문적 구성을 빚어낸다.
혹자는 그의 시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둔 비판적 지식인의 시선에 갇혀 있음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하지만 비판적 지식인의 시선은 그나름의 진정성을 지닌 채 그시선의 깊이를 확보해 갈 때 귀중한 독자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니 시선의 성격을 지적하고 말 것이 아니라 그성과의 구체를 밝혀야 할것이다.
또 혹자는 그의 지적성찰이라는 것이 상투적 사고와 진부한 상식의 되풀이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런 비난은 시의 내용적 측면만을 따로 분리해내어 그것을 개념어로 번역하는데 그침으로써 낳아지는 것일 따름이다. 오히려 진부한 상식을 빛나는 지혜로 끌어 올리는 것이 김광규의 지적성찰의 몫이다. 말하자면 의식의 자동화 현상으로부터 진실을 구출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그비밀은 김광규 시가 평이한 일상 언어에 의한 산문적 구성이되 언어의 명칭성을 구현하며 놀라운 시적 긴장을 구축한다는 데서 엿볼 수있다. 그럼으로서 진부한 상식이 빛나는 지혜로 승화되는 것이다 (혹은 그 역이다. 아니 그 양자는 동일한 것의 서로 다른 측면이다라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
이번 시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대조법에 의한 구성인데 이 역시 위와 같은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젊은 나이에 총탄에 쓰러진 한 독립운동가와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교묘하게 치부한 어느 재벌의 삶을 대비한 「1과2」, 옛농촌에서의 행복했던 겨울 밤과 오늘날 도시에서의 불안한 겨울 밤을 대비한 「겨울밤」 ,맨손으로 다니는 부유층과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서민층 및 가방을 들고 다니는 부지런한 학생과 맨손으로 다니는 머리 속이 텅빈 학생을 대비한 「보따리나 가방을 든 경우」 등을 보면 상투적인 2분법적 사고의 소산이 아니라 그 상투성에 함몰되어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고 말기 쉬운<상식>을 지혜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광채를 뿜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승화의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아이러니다.
김광규의 아이러니는<산문→시>, <상식→지혜>의 승화과정의 핵심적 요소다.
나의 우려는 현실 변혁의 잠재된 에너지와 가능성의 체험으로부터 김광규가 원천적으로 단절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그렇겠는가. 지혜가 깊어지고 상상력의 역동성이 심화되어 가는데 말이다. 김광규의 다음과 같은 시구는 나의 우려를 기우로 만들어 버린다.
피어나는 꽃의 마음을
가냘프다고
억누를 수 있느냐
어두운 땅 속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의 힘을
보이지 않는다고
업신여길 수 있느냐 (「나무처럼 젊은이들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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