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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못 그린다고 두 번이나 쫓겨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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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이 몇 종인지, 총 몇 권이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1980, 90년대 만화가게를 들락거렸던 세대라면 그의 이름은 친숙하다.

주먹세계와 기업경영을 넘나드는 초인적인 주인공의 성공신화를 그려온 만화가 박봉성(54)씨. 그가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잡지연재를 거치지 않고 며칠 간격으로 후속편을 쏟아내는 '대본소 만화'는 곧잘 폄하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그의 이름이 귀에 익은 것이 다작(多作)때문만은 아니다.

천재복서이자 경영의 귀재 '최강타'가 주인공인 '신의 아들'(84년)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함께 80년대 만화 붐을 일으킨 주역이었고, 96년 시작한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는 중국.러시아의 암흑가를 아우르는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요즘도 제5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박씨를 지난주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3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64년 만화가 오명천씨의 문하생이 됐으니 만화입문으로는 40주년이다.

사실 그는 단행본 데뷔작 '떠벌이 복서'(74년)가 실패해 이후로도 10년 가까이 무명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한동안 고향 부산에서 한복에 금박 붙이는 일로 생계를 잇다가 30대 중반에 다시 도전한 '20세 재벌'(83년)이 출세작이 됐다.

그는 "문하생 시절 그림을 못 그린다고 두 번이나 쫓겨났었다"고 고백했다. 처음부터 '멋진 그림'보다는 칸을 나눠 '스토리 있는 그림'에 골몰했고, 그림 그릴 시간의 절반은 '폭풍의 언덕''삼국지'같은 소설책을 파고든 탓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평자들은 그의 성공을 '탄탄한 스토리'의 공으로 돌린다.

한창 때는 한달에 22권이나 만화책을 냈다는 그는 "구상이 막히면 산에 올라가 정신을 모으고 내가 '최강타'라는 최면을 걸곤 한다"면서 "글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신, 자기 외에 영감을 주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박봉성'의 이름 석자가 붙어 출간된 만화는 홈페이지(www.bongseong.com)에 올라있는 것만도 2백30여종, 권수로 3천권을 훌쩍 넘는다. 이 같은 다작은 현재 60여명인 부산의 작업실 식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중에는 20년 가까이 함께 일한 경우도 있다.

'주먹강호''의적' 같은 요즘 작품에는 저자를 아예 '박봉성 프로덕션'으로 표기한다.

한국사회의 고속성장 신화가 휘청이고, 만화시장도 불황의 골이 깊은 탓일까. 그는 "솔직히 무엇을그려야 할지, 만화계가 어떻게 될지 계산이 안나온다"고 했다.

이런 불안을 그는 도전으로 맞서기로 했다. 지난해 말부터 동료 만화가들과 모임을 거듭하다 최근 '대한민국 만화중심'(이하 만화중심)이라는 만화콘텐츠 회사를 차렸다. 주주로 참여한 만화가는 강촌.고행석.김철호.야설록.오일룡.조명훈.하승남.황성.황재 등 10명. 여기에 외부투자와 전문경영인을 더했다.

만화중심이 겨냥하는 것은 중국시장이다. 다음달 12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 때맞춰 사이트(www.comiclife.net)의 문을 열고, 오는 11월에는 중국 현지의 포털업체를 통해 온라인 유료만화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박씨의 작품 중 '새벽을 여는 사람들''가진 것 없소이다' 등이 현재 중국어로 번역 중이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중국 감독 쉬커(徐克)와 한국 만화가 황성의 공동작업을 추진 중이다. 무협소설인 '칠검하천산'을 중국에서는 드라마로, 한국에서는 출판만화로 만들어 양쪽 시장에 나란히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인 협의를 위해 徐감독이 다음달 내한할 예정이다.

만화인생 30년. 좌절을 모르는 주인공 '최강타'처럼 그의 도전도 계속될 모양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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