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이루고 "때"를 기다린다|지지부진「헌특 위」와 여-야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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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개헌요강이 확정되고 신민당도 그런대로 고문폭로대회를 무사히 치러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것 같은데도 국회 헌특의 본격가동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민정당이 오는 25일께 당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후 주요간부들이 총동원되는 의원내각제홍보에 나설 예정이고, 그런 다음에야 국회 헌특의 7대도시 공청회→헌특 3개소 위의 인원배정 등 이 이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곧이어 9월20일부터는 아시안게임이 있기 때문에 헌특의 본격가동은 10월 들어서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야당은 공청회를 빨리 하자는 입장이지만 야당 역시 본질문제협상을 서두르는 자세는 아니어서 여야모두「결전」의 시기를 멀찌감치 잡아 놓고 있다는 인상이다.
현재 여건에서 협상을 서둘러 봐야 의원내각제대 직선대통령제로 맞서 조기결렬밖에 나올게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민정당은 개헌안 요강작성이 완료됨에 따라 그에 대한 당론확정 과정과 이의 국민지지기반 확산을 위한 홍보전략, 그리고 국회개헌특위의 대응전략 등을 세우느라 부산하다.
민정당은 16일 노태우 대표위원과 헌특 위의 채문식 위원장, 이치호 요강작성 6인 소위위원장 등 이 청와대로 전두환 대통령을 방문, 요강을 보고하고 의원임기 등 몇 가지 복수 안에 대해 재가를 받았다.
6인 소위의 작업에는 정부측 관계자도 깊이 관여했고 개헌안의주요 골격은 이미 확정된 상태로「지시」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간사는『아무런 사전지침이 없는 가운데 안을 만들어 자랑스럽다』고 시치미.
그러나「국회의원임기 5년「수상」이라는 명칭 등에 대해서 채 위원장과 소위위원조차 몰랐다는 사실은 사전지침과 당 외의 최종 관여가 큰 작용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정당은 16일 중집 위에 앞서 15일 채 위원장·정순덕 사무총장 등 이 내무·법무·문공·노동장관 등으로부터 개헌안과 관련한 정부측 의견을 들었다는 얘기다.
민정당은 18일 의원총회, 19일 중 집 위를 열어 안을 확정하며 22일에는 중앙위운영위원회를 열어 개헌안을 당론으로 의결할 계획인데, 민정당은 실은 25일 께 있을 당 안의 국회개헌특위제출이후의 정국운영방안에 부심 하는 눈치다.
14일 저녁에 열린 당헌특위에선 다수의원들이 국회개헌특위일정을 제3차 회의처럼 의제 없이 열어서는 안되며, 민정당 안이 마련된 만큼 7대도시 개헌공청회일정을 여-야간에 조속히 합의하라고 주문.
그러나 당 수뇌부는 당 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수뇌부의 지방순회 이후에 국회개헌공청회일정을 잡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어 여야간에 이를 놓고 상당한 진통이 따를 기미.
민정당 측은 여야간 본격협상은 시간이 촉박해야 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다소 시일을 끄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민정당 측은 우선 국회 헌특에서 각 기의 안에 대한 제안설명, 찬반토론(질의답변)까지 거친 후 공청회일정을 잡는다는 복안.
중앙에서 찬반토론을 하는 동안 민정당 측은 노 대표가 오는25일부터 9월13일까지 전주 등 15개 도시를 순방할 계획인데 취임 후 본격적인 지방순회를 처음 하게 되는 노 대표로서는 이번 기회가 대 국민 이미지부각을 위한 계기가 될 것 같다.
민정당은 이처럼 개헌안 확정과 대 국민홍보 등에 주력하면서도 당정개편문제의 추이에도 내심 관심을 쏟는 게 사실인데 민정당 개헌안이 확정되면 부분적인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당 내외에서는 여전히 나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부분적 개편과 함께 당 개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기도해서 당정개편 론은 계속해서 내연상태일 듯.
신민당은 고문폭로대회를 무사히 치러 일단 한숨을 돌리면서도 헌특 운영·구속자 석방문제 등 현안에 대한 당내 계파들의 이해와「재야와의 연계」라는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일관된 대여전략을 구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민당 내에는 기본적으로「재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회개헌특위에서 단 한사람의 패배자도 없는 민주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주장과「헌특에 대한 기대보다 재야를 포함한 국민의 힘을 형성한 후 이를 바탕으로 여야간의 실세대화→직선제개헌을 이뤄야 한다」는 두개의 상이한 시국관이 존재하고 있다. 이같은 두 갈래 주장은 민주화 방법론을 둘러싼 명분다툼과 함께 개헌이후의 정치적 실리까지 계산에 넣은 것이기 때문에 늘 당론을 명쾌히 결정하기 어렵게 하는 기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신민당의 그같은 고민은 헌특에 응하고도 14일 별도의 폭로대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든 가 대회를 치르되 충돌 없이 치러야겠다는 계산에서나, 또 그에 대해 재야와 운동권이 강한 불만을, 당내 일각이 아쉬움을 표시했다거나 하는 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두 김씨가 기회 있을 때마다 신민당과 재야, 그리고 자신들과 이민우 총재의 단결이 민주화운동의 핵심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점도 역설적으로 이들이 어떤 상황하에 있는지를 되짚어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야권구성요소간의 이해차이는 정국이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면 할수록 더 치열하게 표출될 것이 분명하다.
민정당이 당의 개헌안을 확정하고 대대적인 홍보 전을 벌인다는 계획에 대해 신민당은 당장 대응방안을 짜야 할 형편이다.
민정당이 의원내각제를 들고나 온 이상 야권도 직선제를 구호처럼 주장하는 차원에만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정당 안의 확정이후 열리게 될 국회 헌특 위의 공청회에서는 논리적 공방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신민당의 입장으로서는 어차피「양보」를 전제로 하지 않고 있는 한 이같은 이론싸움에 말려들 수 없는 형편이어서 새로운 처방을 모색해야 될 처지다.
19일 두 김씨와 이 총재가 갖는 3자 정례회동에서는 이같은 여건변화와 관련된 신민당의 개헌전략 전반에 걸친 이견조정 작업이 있으리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신민당의 관계자들은 국회 헌특의 7대도시 공청회가 9월 하순에나 끝나고 이어 아시안게임이 있기 때문에 10월초까지는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소강국면이 지속되리라 보고 있다.
왜냐하면 부천사건·독립기념관화재 등 호재에도 불구, 지난 5월 이후 보여지는 범 야권내의 미묘한 시각차이라든가 여건미성숙 등 때문에 이기간 내에 조직적 행동은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민당내의 각계파도 민감한 시기에 장외운동을 확산할 경우 서로의 논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게 되고, 자칫하다가는 중산층이나 재야의 지지를 모두 잃을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가급적「결전」의 시기는 늦추려는 게 아닌가 분석된다. <이수근·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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