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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에 의한 모차르트를 위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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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791년 9월 30일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아우드 데어 비덴'극장.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마술피리'의 초연 무대가 작곡자의 지휘로 막이 올랐다. 대본까지 써서 작곡을 권유한 흥행사 에마누엘 쉬카네더(1751~1812) 가 파파게노 역으로 직접 출연했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극장 앞은 개막 몇 시간 전부터 티켓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연일 장사진을 이뤘다. 매일 밤 수백명이 표를 구하지 못해 헛걸음을 할 정도였다. 모차르트도 병석에 드러눕기 전까지 매일 저녁 공연에 참석했다. 하지만 흥행 성공에 따른 부와 명성을 누리지도 못하고 초연 66일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쉬카네더는'마술피리'공연으로 떼돈을 벌어 1786~1801년 '테어터 안 데어 빈'을 지었다. 이름처럼 빈 강변에 들어섰다. 빈 강은 다뉴브 강의 지류로 지금은 복개돼 노천 시장으로 바뀌었다. 극장 입구에는 파파게노 복장을 한 쉬카네더의 조각상이 서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테어터 안 데어 빈이 새단장을 끝내고 오페라 극장으로 재탄생했다. 8일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빈 심포니의 갈라 콘서트로 문을 열었다. 1962년 뮤지컬 극장으로 전락한 지 44년만에 옛 명성을 되찾은 것이다.

'테어터 안 데어 빈'은 1805년 베토벤의'피델리오'가 초연된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쉬카네더는 극장 안에 방을 따로 마련해 베토벤이 마음놓고 작곡에 몰두하게 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2번, 제3번, 제5번, 제6번이 초연된 것도 이곳이다. 19세기엔 오페레타 극장으로 사용됐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레하르의'메리 위도'등이 초연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빈 슈타츠오퍼가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자 빈 국립오페라는 1945~55년 이곳으로 무대를 옮겼다. 칼 뵘, 한스 크나퍼츠부쉬,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등이 지휘봉을 잡았다. 55년 빈 슈타츠오퍼가 재개관한 후 안전상의 문제로 문을 닫았다. 한때는 도심 재개발 계획에 걸려 대형 주차장으로 바뀔 뻔했다.

테어터 안 데어 빈(1000석)은 세계 음악의 수도임을 자부하는 빈에 빈 슈타츠오퍼(2209석), 빈 폴크스오퍼(1400석)에 이어 들어선 제3의 오페라 극장이다. 이곳에 클래식 음악의 꽃을 다시 피우겠다고 결정한 것은 2003년. 빈 클랑보겐 예술감독을 지낸 롤란트 가이어가 총감독으로 임명됐다.

올해는 탄생 250주년을 맞는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를 대거 상연한다. '마술피리'덕분에 세워진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상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첫 공연으로 모차르트의 생일인 27일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로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를 무대에 올린다. 또 내년부터는 몬테베르디.글룩.하이든.케루비니 등 빈 슈타츠오퍼와 빈 폴크스오퍼에서 외면하는 레퍼토리를 상연할 계획이다. 1801년에 문을 연 1000석짜리 극장과 베르디.푸치니 등 낭만주의 오페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www.theater-wien.at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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