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조급성이 자초한 비극|"값싸고 빠르게"…과시욕과 허영심 버려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언젠가 어떤 잡지에 「잎이난 후에 꽃이 피었으면」이라는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도 한국의 꽃들은 잎이 나기도 전에 핀다. 목련이나 개나리, 벚꽃들은 봄이 오기가 무섭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매달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 꽃들은 가벼운 바람에 부딪쳐도 금방 떨어져버린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프랑스의 꽃들은 잎이난 후에 핀다. 목련과 꼭 닮은 후박꽃은 잎이 다 난후에 피는데 어지간한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것이다.
4일밤 목천의 독립기념관 본관이 개관11일을 앞두고 불타버렸다는 기사는 하루종일 나를 우울하게했다. 구리촛농처럼 녹아버린 건물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잎과 꽃의 이야기였다.
독立기념관. 굳이 공기를 1년씩이나 앞당기면서까지 아시안게임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눈을 그토록 즐겁게 해주고 싶었을까. 그 누구의 영광을 위해, 그 어떤 전시효과를 위해 겉만 화려한 꽃을 피우려 했을까.
한국사람들은 기록을 좋아한다. 서양에 비해 뒤늦게 산업화의 열차를 탄 탓인지 그들은 『빨리 빨리!』『싸게! 되도록 값싸게!』라고 외친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을때 한국인들은『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덜들이고도 빨리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도로파손·재포장 등으로 든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면 「유례없이 비싸고 아직까지도 준공하지 못한」도로임에 틀림없다. 한국인들은 너무 조급하다. 고속도로뿐만이 아니다. 이사온지 두달도 안되는 우리 아파트 실내에서 내가 직접 뜯어고친 손잡이 문짝이 한두개가 아니다.
이번 독립기념관 화재는 어쩌면 이같은 한국인의 조급한 습관이 스스로 자초한 비극일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건물 내부를 보면 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이 보통 건물인가. 독립정신의 상징이며 한국국민들의 유례없는 대단결의 결과 아닌가.
왜 그런 건물을 엉터리로 만들었을까. 왜 최고의 정성으로 만들지 못했을까. 왜 기본적인 안전시설도 갖추지 못했나. 신문에서 보니 소화전에선 30cm높이의 물줄기가 잠시 뿜어져 나왔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배선도, 안전장치도, 소화전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정부당국이 최종검사를 했어도 배선의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다. 왜 불쌍한 전공들만 탓하는가. 생각해보자. 왜 전업회사는 무자격 전공들을 고용했을까. 왜 완공책임회사는 3류 전업회사에 하청을 주었을까. 왜 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용인했을까.
아마 이랬을 것이다. 당국은 「값싸고 빠르게」공사를 끝내겠다고 덤벼드는 회사와 기쁜 마음으로 계약했을
것이다. 그 회사는 「값싸고 빠르게」배선공사를 끝내겠다고 덤벼드는 3류 전업회사에 기쁜 마음으로 하청을 주었을 것이다. 하청회사는 싼값으로 일을 시킬 수 있는 무자격 전공들을 기쁜 마음으로 고용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의 대부분 건설업계가 이와같은 연쇄적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이같은 한국인의 「값싸고 빠르게」라는 외양위주, 실적위주의 사고방식이 마침내 민족정신의 상징인 독립기념관까지 불사르고 말았다. 독립기념관이 전업회사의 건물인가. 완공책임회사의 건물인가. 아니면 정부의 건물인가.
나는 또 진심으로 묻고싶다. 화재의 근본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높은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른 「높은 사람」들도 정신을 차릴 것이다. 불쌍한 전공들만을 맨 앞에 내세워 국민들의 비난을 가리려 해서는 아무도 납득못할 것이다. 나는 「눈가리고 아옹」이라는 한국속담을 또다시 쓰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런 유머를 하는 것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한국에서는 독립기념관 참사같은 것이 여러번 터질수록 좋다. 그런 일들만이 내가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그 조급성과 과시욕을 고쳐줄 수 있는 유일한 충격이라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