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헛갈리는 미국 대선 여론조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기사 이미지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워싱턴포스트(WP)가 여론조사기관인 서베이몽키와 공동으로 조사해 이달 초 발표한 50개 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은 도널드 트럼프에 압승하는 게 분명했다. 주별 여론조사를 토대로 선거인단 숫자를 계산하면 클린턴이 244명, 트럼프는 126명에 불과했다. 244명은 엄청난 숫자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과반수(270명)만 얻으면 승리하는 방식인데 이 정도면 거의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럼프가 무슨 수로 지금까지 얻은 선거인단의 배 이상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클린턴의 승리를 확신해도 됐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조사는 8월 9일부터 9월 1일까지 한 달 가까이 진행됐다. 이 기간 중 클린턴 지지율은 하늘을 찌르다가 트럼프에 추격당하는 급전직하의 하향 곡선을 그렸다. 클린턴은 7월 28일 끝난 전당대회 이후 컨벤션효과를 만끽하며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WP 조사가 시작된 9일은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집계한 주요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7.9%포인트 차로 트럼프를 앞서며 대세론을 구가하기 시작할 때다. 그러나 조사가 끝난 이달 1일엔 4.9%포인트로 그 차이가 거의 반 토막 났다. 클린턴 전성기의 지지율이 반영된 조사였으니 승리를 확신하기엔 부족했다.

반대로 지난 18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서던캘리포니아대(USC)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가 클린턴을 6.7%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이건 트럼프의 대역전이다. 문제는 이 조사가 패널 조사라는 데 있다. 이 조사는 3000명의 패널 중 매일 400여 명을 조사해 여론 추이를 본다. 패널 조사는 기본적으로 시계열로 분석하는 게 상식이다. 과거에 비해 현재 여론이 어떻게 바뀌었다는 평가에 유용하지 현재 시점에서 지지율 격차가 이렇다고 단정적인 수치로 들이밀기엔 어려움이 있다.

미국 대선의 승부처인 경합주의 여론조사는 또 어떤가. 오하이오주의 경우 CBS뉴스·유고브가 지난 1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이 트럼프를 7%포인트로 넉넉하게 제쳤다(군소후보 포함, 4자 대결 기준). 그런데 사흘 후인 14일 발표된 CNN·ORC 조사에선 트럼프가 클린턴을 4%포인트 앞섰다.

미국 대선은 자고 일어나면 선두가 바뀌는 오차범위 안의 승부가 계속되고 있다. 이래선 숫자가 의미가 없다. 물론 대선 후보 TV 토론회와 같은 중요한 분기점 이후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는 상당한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 대선 일까지 몇% 안팎으로 차이 나는 지지율 격차가 계속될 경우 승부를 전망하기는 불가능하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달 초를 기점으로 이미 대선 승부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민주당과 백악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미국 전역에 광범위한 조직을 갖춘 클린턴과, 충성층의 바닥 열기는 클린턴을 앞서는 트럼프 중 누가 지지표를 투표장으로 더 많이 끌고 오는가의 싸움이 된 지 오래라고 본다. 쉽게 말해 트럼프 승리 가능성을 일축할 단계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채 병 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