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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우정이 긴급하게 필요한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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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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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영화 ‘친구’가 개봉되었던 당시, 영화를 관람한 친구가 물었다. “그 사람들이 친구야? 그들 사이에 우정이 있었어?” 친구의 원초적 질문에 우정이라는 개념을 처음인 듯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무리 지어 어울려 다니는 또래 집단’을 친구라고 정의한다면 그들은 친구 같았다. 하지만 오성과 한음처럼 신의를 기본으로 하는 우정, 최소한의 공감과 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우정은 그곳에 없었다.

친구와 관계 맺는 기술도 성장기에 원가족 내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다. 형제들과 주고받는 감정 요소는 나중에 친구 관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외동으로 자란 사람은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 쉽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소모하거나, 경쟁하고 착취하는 사람까지 친구로 여기거나, 친구를 피해 혼자만의 세계에 칩거하거나. 사춘기에 친구는 심리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를 떠나 자기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때 친구는 새로운 자기, 확장된 세계를 만드는 동일시 대상이다. 청년기가 되면 자기만의 애착 관계를 맺는 일에 열중한다. 그 시기에는 친구보다 연인에게 리비도를 집중시킨다. 결혼 후에는 자연스럽게 열정과 헌신을 가족에게 투자하게 된다. 청년기에도, 가장이 되어서도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문화는 결혼 제도를 위협하는 숨은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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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친구 개념도 모호한 남자에게 “여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세대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공언한다. 그런 이들에게 나도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여자를 정신적으로 열등한 존재, 신체적으로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일 것이라고, 좋은 가장도 아닐 것이라고. 요즈음 젊은 남자들이 ‘여사친’이라는 말을 만들어 우정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점은 다행스럽다.

사실 남자의 우정이 가장 필요한 곳은 가정이다. 최초의 신경증적 몰입이 사라지고, 생리적 호르몬의 유혹도 유효하지 않은 시기가 오면 부부에게 필요한 심리 기능은 우정과 헌신이다. 실제로 중년기 남자들은 “집사람과는 이제 의리로 살지” “마누라와는 동지애로 맺어져 있지” 등의 문장을 말한다. 가끔은 그 문장을 어린 여자에게 “뻐꾸기 날리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아무리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고 해도 그 문장은 그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며, 아내와 안정적 애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아름다운 반증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