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적자로 확대로 「힘의 논리」발동|미 원화절상 강요의 배경와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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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원화의 평가절상 요구를 받기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정부는 미국의 원화평가절상 압력이 구체화되더라도 인위적인 환율조정은 않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있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압력이 주로 대만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환율조정이 경제에 미치는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고려할때 대응자세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도대체 왜 미국이 갑자기 한국에 대해 평가절상을 요구해 왔으며 우리측의 반박논리는 무엇인지, 또 만약 평가절상이 이뤄질 경우 우리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를 부문별로 알아본다. (편집자주)

<배경>
무엇보다도 미국의 무역수지가 계속 악화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천3백21억달러의 무역수지적자를 낸 미국은 올 상반기에만 8백39억달러의 적자를 기록, 올 무역수지적자는 1천6백억달러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은 지난해 막대한 무역수지적자를 해소키 위해 일·서독을 비롯한 선진국에 대해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당초 미국생각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주로 달러의 과대평가에 있다고 주장, 달러가 제자리를 찾을 경우 미국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되살아나 무역수지는 개선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사태가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사태악화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유를 찾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개도국에 책임을 돌려보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선진국은 미국의 달러가치하락에 협조를 해주었지만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오히려 이틈을 노려 미국시장공략을 가속화, 과거 선진국이 차지하던 몫을 대신 누리고 있다는 이유다.
업계와 의회의 비판이 강하게 일자 선거등을 앞두고 있는 행정부도 「정치적 고려」로 개도국에 대한 시장개방압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환율조정요구까지 들고나선 것이다.
여기서 주요 타기트로 등장한 것이 대만과 한국이다.
대미무역 흑자국이며 전체적인 경상수지도 흑자고 평가절상요구를 받아들일만한 「경제체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다.
브라질·멕시코·베네쉘라 등은 미무역흑자와 그동안의 잇단 평가절하에도 불구, 중남미국가의 대부로서 전통적 관계를 고려, 외채과다라는 이유로 일단 대상에서 제외됐다.

<우리측 입장>
미국의 느닷없는 평가절상요구는 한마디로 명분도 논리도 없이 「힘의 논리」를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우리의 기본 입장이다.
저작권·물질특허 보험시장개방, 나아가 양담배수입까지 미국요구를 해달는대로 들어준지 불과 며칠이 안돼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것은 만약 그것이 「진의」라면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는 감정적 반발마저 있다.
우리측 반박논리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일국의 환율정책이란 쌍무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며 더우기 현재 우리의 환율체계가 바로 미국의 권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평가절상의 대상으로 대만과 함께 한국을 지목한 것은 경제체질 등을 감안할때 전혀 걸맞지 않는다는 점이며, 세째는 설사 우리가 절상요구를 받아들인다 해도 미국의 무역수지개선에 별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미달러환율은 SDR(lMF의 특별인출권)에 대한 미달러의 가치변동에 따른 환율을 하나 계산하고 또 우리가 독자적으로 미달러·일본엔·서독마르크·영파운드·불프랑 등 5개국통화를 무역비중에 따라 가중치를 주어 만든 또다른 환율을 계산한후 이들을 다시 가중평균해서 매일매일 계산하고 있다.
따라서 엔이나 마르크 등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다 해도 우리의 통화바스킷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결국 달러가치하락과 거의 상쇄돼 별 변동이 있을수 없게 되었다. 물론 각종 여건을 감안해 일정 폭을 가감할 수는 있다.
미국은 이같은 가감폭을 이용, 대미달러환율을 인위적으로 낮춰달라는 얘기인 모양인데 가감폭(이른바 플러스α)이란 한나라의 국내외 균형을 두루 따져 조정되는 것이지 특정국가와 국가사이의 불균형을 고치는데 쓰라고 있는게 아니란 점은 미국경제이론에서 누누히 가르치고 있는 바다.
또하나 그렇다면 과연 대미달러환율이 「실질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변동환율 체제로 이행된 73년이래 지난 6월말까지 환율변동을 보면 오히려 현재 수준도 낮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기간동안 대미달러의 명목환율은 3백98.32원에서 8백88.34원으로 올랐지만 그동안 우리 물가가 5백5.7%, 미국은 2백22.1% 각각 올라 실질환율지수는 98로 오히려 기준시점(73년=1백)보다 고평가 됐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론적인데서부터 문제가 있는 터에 우리를 대만과 같은 선상에 놓고 얘기를 한다는 것은 더욱 무리다.
먼저 외채부담 문제다. 대만의 경우는 이미 70년부터 계속적인 경상수지흑자를 내 이제는 완전히 순채권국의 지위에 올라있다. 대외부채는 60억달러 정도지만 외환보유고만도 2백20억달러를 웃돈다.
이에 비해 우리는 4백70억달러 가까운 외채를 지고 있고 연간 원리금상환만 7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4위의 채무국이다.
대미 무역흑자만 해도 우리의 경우 막대한 군사장비구입, 해외공사장에서 직접 사들이는 건설기자재 등을 감안하고 기타 재화및 용역부문에서의 마이너스 등을 감아하면 과연 혹자인가에도 의문이 남는다.
또 올해 경상수지흑자를 내자마자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선지 6년만인 71년에, 대만은 3년만인 73년에 첫 평가절상을 했고 그후에도 미국의 고달러에 편승, 사실상 저평가의 혜택을 누려왔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설사 우리가 절상요구를 들어준다해서 미국의 수지개선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얘기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높이지 않고서는 환율조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일본이 엔화의 엄청난 평가절상에도 불구, 오히려 대미무역흑자가 더욱 늘어나는 추세만 봐도 알 수 있다.

<평가절상의 영향>
한마디로 원화의 평가절상은 미국의 무역수지개선효과는 거의 없지만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임에 틀림없다.
환율조정은 성장 국제수지 물가등 경제의 모든 부문에 파급된다.
아직까지 평가절상이란 것을 해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어 그 파급효과가 경험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평가절하와 반대방향으로 생각하면 된다.
평가절상은 수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려 무역수지에 마이너스영향을 미치며 성장 고용에 마이너스, 물가안정에는 플러스효과를 각각 준다고 되어있다.
미국의 계산에 따르면 원화가 15∼20% 평가절상될 경우 우리의 대미수출은 10억∼20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우리 대미수출물량(85년1백17억달러)의 약10∼20%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우기 달러외의 모든 통화가 달러환율에 연동되도록 돼있어 대달러환율이 내리면 따라 내리게 마련이다. 미국이외의 모든 국가통화에 상대적으로 평가절상된다는 얘기다.
반대로 수입은 종전보다 수입가격이 떨어지므로 늘게 된다. 더우기 수입가격이 떨어지면 요즘 서두르고 있는 부품 소재·기계류 등의 국산대체노력이 크게 약화될 소지도 있다.
수출이 줄면 수출주도형의 우리 경제체질에서는 성장도 따라서 저하된다.
환율 5%인상이 5년동안 성장률을 1.2% 높이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는데 환율인하도 같은 폭으로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성장률저하의 요인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곧바로 고용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10억달러의 수출감소는 대체로 5만명의 일자리를 줄이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물가는 물론 수입가격하락으로 인하요인이 생긴다. 대체로 수입물가가 전체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30∼40%정도이므로 대미달러환율이 15%쯤 내리면 물가는 5∼6%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외채에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환율이 내릴 경우 원화부담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빚 갚기는 다소 쉬워질수 있다.
예컨대 달러외채를 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환율이 내린 만큼 원화부담도 줄어 적잖은 환차익이 생긴다. 그러나 바로 이점 때문에 외채를 들여오는게 상대적으로 유리해져 외국빚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의 대응>
정부는 환율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인위적인 원화절상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속생각은 미국이 의회및 업계등에 대한 「정치적 배려」로 겉으로는 원화평가절상요구를 해오고 있지만 실제야 그럴리 있겠느냐는 것인 듯하다.
정부는 현재 환율체계로도 달러하락이 계속될 경우 원화의 대미달러환율은 소폭씩 떨어지게 돼있으며 이에 따라 이미 6차5개년계획에도 대미환율은 연평균 1.2%씩(86년 8백80원→91년 8백30원) 떨어지는 것으로 잡고있는만큼 이 스케쥴대로 밀고나가도 충분히 통화가치조정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환율조정압력이 이같은 합리적 기반에서 타결돼 결국 기우로 끝난다면야 별 문제 없겠지만 문제는 대미의 요구가 더욱 거세진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인데, 한마디로 「환율은 협상대상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의지조차 「변경대상」이 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할 것이다. <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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