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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 우선 등 예상 못한「민의」쏟아져|막 내린 지자제공청회…어떻게 반영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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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 지방자치제실시 연구위원회가 주관하는 전국13개 시-도 순회 지자제공청회가 31일 서울의 종합공청회로 모두 끝났다.
정부는 그 동안 △지자제실시지역 △지방의회선거에의 정당참여허용여부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출 △중앙과 지방간의 권한배분 △지방의회와 자치단체간의 관계 △지방재정확충문제 등에 관한 공청회결과를 토대로 당정협의를 거쳐 8월중에 최종안을 마련, 오는 9월 정기국회에 관련법안을 일괄 제출할 방침이다.
지금까지의 공청회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지방의회구성범위문제와 정당참여문제였다.
정부는 이미 서울 등 14개 시-도에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정당참여를 허용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으나 맨 마지막의 서울공청회를 제외하고는 결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직할시인 부산·인천·대구 등지에서까지 기초자치단체인 시·군부터 우선 실시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리라는 것은 정부관계자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직할시 승격을 앞둔 광주의 경우도 오히려 타 지역보다「기초」실시주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해 광역을 주장한 사람은 단 한사람밖에 없었을 정도였다.
우선 실시문제에 언급한 토론참가자의 약 6, 7할 정도는 기초자치단체부터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정당의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풀뿌리민주주의」라는 지자제본래의 의미를 살리고 주민의 참여의식제고와 주민복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주민직접참여가 가능한 시-군 단위의 지자제가 우선돼야 하고, 여기서의 정당참여는 무익하다고 주장했다.
자치단체장의 선임방식에 대해서는 현행의 임명제를 당분간 유지하자는 견해와 주민에 의한 직선제 또는 적어도 지방의회의 간선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슷하게 맞섰다.
그러나 임명제를 주장한 토론자의 대부분도「제도정착 시까지」라는 단서를 붙였다.
자치단체의 기능과 지방재정의 확충문제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 강약의 차이는 있어도 한결같은 주장이 이어졌다.
중앙의 업무를 대폭 자치단체에 이양하고 국세를 과감히 지방세로 전환하는 것이 지방자치제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한 선결과제라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이상과 같은 공청회결과의 수용여부다.
정부는 공청회결과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현실을 떨쳐 버리면서까지 결과에 구속될 수 있느냐는 태도.
따라서 공청회의견의 수용에는 분명한 한계선이 그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드러난 공청회결과를 받아들인다면 지방의회구성범위는 시·군·구 우 선이 돼야 한다. 이는 정치적 짐을 덜고 시-도의원 같은 잠재적 경쟁상대를 키우지 않으려는 민정당 의원들의 생각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실시범위문제에 대해 정부는 아직도「광역」쪽을 놓칠 수 없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 부담능력과 정부의 민주화의지를 가장 적절하게 담을 수 있는 최대공약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초자치단체부터 우선 실시할 경우 전국 56개시와 1백39개 군, 그리고 40개의 구 등 모두 2백35개의 기초단체에 지방의회를 구성하는데 따르는 부담이 너무도 힘겹고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을 들어 기초단체실시에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부터 우선 실시할 경우 서울의 17개 구 모두에 지방의회를 설치하는 것은 무리도 무리지만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이론도 있고, 구 자치제를 하기 위해서는 구의 세분화 등 행정구역개편이 선행돼야 하므로 구 단위자치는 광역이후의 문제로 생각해 온 게 사실이다.
다만 기초자치단체의 지자제실시는 주민들의 여망에 따라 가급적 빨리 실시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거나 시한을 명기함으로써 공청회의 다수의견을 처리(?)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정당참여문제는 공청회의견이 참여배제가 압도적인 점을 인정,「배제」를 받아들이거나「정당 원의 출마는 허용하되 정당표방은 금지」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당초 정부도 정당배제를 검토하다가 여론을 의식하고 민주화의지를 보인다는 차원에서 정당참여허용으로 선회했기 때문에 공청회의 정당배제론 우세는 일면 안도할 만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참여배제를 정부안으로 확정할 경우 야당의 반발이나 다른 갈래의 여론등장 등의 역풍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급적 신중히 다룰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이 문제는 대야협상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자치단체장의 선임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공청회에서 직선주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았던 것을 내심「다행」으로 생각하는 사항이다.
정부는 사실 이 문제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굳혀 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문제도 여-야 논의과정에서 또 한번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 지방의원선거구와 의원정수문제도 중 선거구제 및 중 의회원칙이 그대로 지켜질 전망이나 역시 민정당의 대야카드로 활용될 전망이다.
아무든 지자제는 난관이 예상되는 개헌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부가 아무리 내년실시에 대비해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무자자신들도『과연 내년에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별로 어렵지 않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야가 지자제실시시기를 87년 상반기로 합의한 것은 개헌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84년의 일이었던 만큼 엄청나게 정치환경이 바뀐 지금에 와서 그 합의에 꼭 묶일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도 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지자제의 실시연기론을 주장하는 일리 있는 소리도 들려 오고 있다. 그러나 연기여부는 어디까지나 여야간 개헌협상의 전도에 달려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뭐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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