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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공륜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심의에 대한 불신이 노골화해서 마침내 극한적인 대결의 마당으로 치닫고 있다.
엊그제는 한 중견영화감독이 자기 작품의 납득할 수 없는 공륜심의에 항의해서「영화생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자해적인 선언을 하고 나서는가 하면 1일엔 영화인협회가 이 사태를 개인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는 전 영화인의 문제로 확대, 이정희 공륜위원장의 사퇴와 심의기구 개편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 공륜체제는 출발 당초부터 영화인들의 창작자유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선언하고 나섬으로써 공륜이 영화예술 진흥을 위한 심의기능에 보다는 그 활동을 억제, 제한하는 검열 적 성격을 대표하는 기구라는 인상을 심었다.
공륜이 비록 공연법이나 심의규정을 철저히 적용해서「규제」에 충실한 것은 자기의 일에 충실한 일면이 있다고는 하겠으나 그것이, 바로 우리 영화예술의 발전이나,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예술활동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된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공륜이 받아야 하는 비판 중에는 그들이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는 심사기준이란 것이 과연 국가를 위한 것인가 하는 점도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국가안보」를 우선 순위에 놓고 심의하는 것은 국민이 모두 수긍하는 바이지만 미묘한 테마를 놓고「안보」라는 명분으로 제한하려 드는 태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 기준이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예술작품의 심의는 어디까지나 작품전체에 흐르는 창작 정신과 작가의식을 기준으로 그 예술성을 살리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륜의 심의는 대체로 어떤 장면에 무엇이 나타난다는데 중심이 놓이기 때문에 작품의도는 어찌되었건 무조건 금기장면만 나오면 가위질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공륜의 심의는 옷을 벗으면 종교모독이고, 분뇨를 뒤집어쓰면 공서 양속을 해치는 것이 되어 가위질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기계적 심의는 예술심의의 상식을 벗어난 일로 마땅히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륜의 심의가 관계 공무원들의 의도를 반영하기보다는 예술을 이해하는 인사들에 의해 자발적이고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국민적 성숙과 제도의 민주화 추세로 보아서도 72년에 만들어진 영화 법 13조의 규정은 선진국지향의 윤리규정으로 개선될 필요도 있다.
다만 영화인들로서도 영화제작의 자유를 남용하여 영화「예술」을 다만 흥행도 패로 왜곡시키는 일은 삼가야겠다.
영화시장 개방에 따라 50여 개로 늘어난 영화사가 막대한 외화를 들여가며 관능과 포력 조장하는 저질 미국영화들을 다투어 들여오는 태도도 심각히 반성해야겠다.
공륜이 그런 폐해를 막기 위해 애쓴 흔적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다만 그것을 빌미로 수입될 만한 영화를 불합격시킨다 든 가 했던 것은 불행이었다.
공륜이 영화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심의기능을 수행하는 기구가 되고 아울러 우리 영화계가 문화적 갈증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영화다운 영화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양식 있는 예술인의 정신을 견지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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