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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독거노인 2500명에 무료 생태여행…쇼핑·옵션·팁 없는 3무 패키지 투어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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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생태·공정여행 ‘달 따러가자’ 이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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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경씨는 “누구나 갈 수 있는 여행복지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송봉근 기자]

환경운동가 이준경(50)씨는 2006년 봄 작은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낙동강 답사를 떠났다. 1997년부터 부산 온천천에서 국내 최초로 도시 하천 살리기 운동을 펼쳐온 그였다.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해 안동, 부산을 거쳐 남해로 이어지는 동남권의 젖줄 낙동강의 생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낙동강(510.4㎞)은 압록강에 이어 한반도에서 둘째로 긴 강이다.

“맹꽁이가 우는 시간은 언제고, 수달의 발자국은 어디로 나 있는지까지 알 만큼 낙동강 곳곳을 살폈죠.” 1년 반 동안 이씨는 낙동강을 30번 가까이 다녀왔다. 그가 걸은 거리만 4000㎞에 달한다. “처음엔 환경 답사가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낙동강의 매력에 흠뻑 빠졌죠. 말이 답사지 사실상 훌륭한 여행을 다닌 셈입니다.”

마치 개봉 중인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김정희처럼 이씨는 직접 ‘보고 만지며 맡았던’ 풍경들을 모아 낙동강 도보 코스를 그렸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소백준령에선 수백 년 보존돼 온 원시림의 모습을, 국내 최대 습지인 우포늪에선 수생식물과 철새들이 어우러져 사는 풍경을 담았다. 환경운동가의 손으로 그린 ‘낙동강 에코투어’의 첫 출발이었다.

2011년 그는 뜻 맞는 지인들과 사회적 기업 ‘달 따러가자’를 설립했다. “인위적인 관광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즐기는 생태여행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고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이씨는 ‘낙동강 에코투어’를 시작으로 5년간 울산 고래여행, 울릉도 트레킹, 동해안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등 50개가 넘는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달 따러가자’가 내세우는 또 다른 슬로건은 ‘공정여행’이다. “대기업 패키지 여행은 대규모 호텔 체인과 쇼핑전문점만 이익을 챙깁니다. 정작 주민들은 불편만 늘고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기도 하죠.” 이씨는 “수요자 입장에선 비용과 불편을 줄이고 주민 입장에선 지역을 활성화시켜 상부상조하는 게 ‘공정여행’”이라고 말했다.

‘낙동강 에코투어’를 위해 이씨는 본인이 걸었던 산골마을의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가 민박 계약을 했다. 앞마당이 넓은 집엔 평상을 놓고 여행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토록 했다. “낙동강을 끼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여행입니다. 하루에 20여㎞를 걷고 또 자전거를 타며 온전히 자신과 자연에만 집중할 수 있죠. 이곳엔 호텔도, 쇼핑몰도 없습니다.”

2013년부터 그가 시작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여행복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장애인과 고아, 독거노인 등 여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가 많습니다. 이들이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신청받아 특별한 하루를 선물하는 일이죠. 물론 비용은 무료입니다.” 그동안 양로원과 지역아동센터, 다문화 가정 등에서 2500여 명의 사람이 100회가 넘는 여행을 다녀왔다.

요즘 그가 새롭게 내세우는 것은 ‘골목여행’이다. 부산의 수정동 산복도로, 아미동 비석마을 등 골목골목 서민들의 삶이 배어 있는 여행지를 찾아다닌다. “해운대, 태종대 같은 비싼 관광지가 아니라 ‘만인보’처럼 사람의 인생 자체가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곳입니다. 골목에서 과거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공동체의 원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사회적 여행 기획 ‘트래블러스맵’ 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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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진면목을 보게 만드는 여행을 꿈꾼다”는 변형석씨. [사진 장진영 기자]

트래블러스맵 대표인 변형석(45)씨도 일반 패키지 여행과는 다른 특별한 여행을 기획하는 ‘사회적 여행기획자’다. “자연에는 최소의 영향, 지역에는 최선의 기여,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할 때부터 그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변씨는 “‘여행사 여행’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여행상품을 만드는 것이 회사를 설립한 이유”라고 말했다.

“9박10일 동안 유럽 5~6개 도시를 돌고 오는 게 제 머릿속에 있는 여행사 여행이었어요. 마지막 날에는 쇼핑몰을 순회하고 현지와 계약한 ‘옵션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그런 여행요.” 변씨는 그러나 “그렇게 패키지로 다녀봐야 결국엔 남는 게 없었다”며 “한두 개 도시만 들러도 여행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여행상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변씨가 내놓은 것이 바로 ‘3無 여행’이다. 트래블러스맵의 여행 프로그램엔 쇼핑과 옵션 코스, 팁이 없다. 그는 “팁을 주는 문화가 있는 나라를 갈 때에는 경비에 팁 가격까지 모두 포함해 처리한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여행자가 여행지의 삶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꾸몄다. “무조건 그 도시의 가장 번화한 도심 호텔을 예약합니다. 여행자가 언제든 호텔에서 나가 대중교통을 타고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가이드와 이동할 때도 교통수단은 무조건 대중교통이에요. 인원 수도 10명 내외로 제한합니다.”

여행지가 아닌 곳을 여행지로 만들기도 한다. “우선 국제기구와 손잡고 식수를 공급하는 탱크나 화장실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홈스테이에 대해 교육하죠. 이렇게 최소한의 인프라를 갖춘 후 해당 지역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만들면 여행자들에겐 새로운 경험을, 주민들에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변씨가 조성한 캄보디아 반티아이츠마 마을은 5년째 인기 여행지다.

변씨는 ‘로드스꼴라’라는 ‘여행 학교’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총 2년 동안 학기마다 장기 여행을 다니며 살아 있는 교육을 체험한다. “첫 학기에는 국내 마을로 여행을 떠나요. 떠나기 전까지 여행 기간에 보고 느끼는 걸 기록할 수단을 공부하죠. 글쓰기든 사진이든요.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그 기록물들을 표현하는 작은 축제를 엽니다.” 두 번째 학기에는 한국인이 많이 이주해 사는 외국, 그 다음 학기에는 각자 선정한 나라로 간다. 마지막에는 트러블러스맵에서 인턴십을 한다.

한번 트래블러스맵을 찾은 고객들은 반복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고객들의 재이용률이 80%를 웃돈다”는 변씨는 “여행을 통해 개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여행지 주민들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윤석만·김나한 기자 sam@joongang.co.kr
사진=송봉근·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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