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계 이상기류 무협소설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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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독서계의 이상기류에 우려의 소리가 높다. 다름아닌 무협소설류의 열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국인 작가 김용의 무협소설 『소설 영웅문』이 지난해 12윌 발간된 이후 8개월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 모두 30만부가 팔려나가는등 강세를 보이자 뒤이어 『대평원』『대웅』 등이 뒤따르고 거기에 『마적전기』『징기스칸』『측전무후』『황하』같은 무협적 역사소설류들도 합세하고 있다.
출판평론가 이중한씨는 『무협소설의 승승장구 추세는 그저 한때의 베스트셀러 현상으로 보아넘기기엔 어딘가 개운치 않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무협소설적 분위기의 도서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최근 성공적 베스트셀러의 한 부류를 이루는 『단』류 역시 무협소설의 기초요소인 「장풍(장풍)으로서의 「세상다스리기」형식과 별차가 없다는 점에서 같은 울타리의 책들이며 정신적 무력감을 반영하는 「운명학」류 또한 이 마당에 집어넣을 수 있는 책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베스트셀러가 한 사회의 정신적 거울이란 점에서 이런 현상은 적지않이 우리사회의 병적증상을 뜻하고있다고 진단했다. 황당하기 때문에, 황당무계한 힘의 사용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답답함이 극심하고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이 더 많은 세태에서 어디론가 탈출구를 찾아헤매는 심성들에 이책들은 대단한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씨는 이 무협소설류들이 새로운 독자들에 의해 읽히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0여년전 일어세대의 마지막 독자들이 일본형무협소설로 우리의 독서시장에 1차 선풍을 일으킨 이래 오늘 다시 새로운 한글세대들은 중국풍의 것으로 재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것을 「변화없는 경제적 심상」의 현상으로 진단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베스트셀러란 한 시기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소재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 전달되는,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문화는 괴있는 늪처럼 정체돼있는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유종호교수(이화여대·문학평론가)는 무협소설류의 기승을 『60년대 이후 공식 이데올로기화한 「하면된다」정신의 또다른 측면으로부터의 대응물』로 파악했다. 「하면된다」의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빌고 나가는 폭력적 양상은 바로 「불가능이 없는 해결사의 세계」인 무협소설의 세계와 상통한다는 것이다.
유교수는 이런 소설류가 이 사회에 만연된 긴장·좌절·허무주의에 대한 일시적 위안을 줄뿐 현실에의 복원력을 상실한 마약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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